[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2일 귀국 후 대선 광폭행보를 선보이고 있지만 일주일 만에 한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귀국 전만 해도 ‘문재인 대세론’을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았지만, 귀국 후 행보는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것이 여의도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다.
19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16∼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지지도는 지난주보다 2.0%p 오른 28.1%를 기록했다. 반면 반 전 총장은 같은 기간 0.4%p 떨어진 21.8%에 머물렀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3%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정치 평론가들은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이른바 ‘귀국 컨벤션 효과’를 바탕으로 급등하기는 커녕 정체되고 하향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로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꼽았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대선 레이스 완주가 불가능해 보인다”며 “일단 보수인지 진보인지 확실한 지지기반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했다”고 일침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본인은 포용적 리더십을 강조하며 좌우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잘못하면 양쪽 모두에게 배척받을 수 있다”면서 “집토끼라도 잡아야 한다. 아직 '샤이(Shy)보수'는 많다”고 충고했다.
참신하지 않은 행보와 메시지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신 교수는 “반 전 총장이 말하는 정치교체, 패권청산 주장은 기존에 한두 번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정치교체 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하고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과연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경쟁은 결국 상대적”이라며 “이미 고정 지지층을 확보한 문재인 전 대표와 다른 자신만의 장점과 매력을 보여줘야 했지만 귀국 후 행보와 메시지를 보면 서툰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내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은 지난 일주일 간 언론을 대동해 지지자들을 몰고 다니는 보여주기식 이벤트 행보만 했다”면서 “국민들에게 참신성을 주기는 커녕 구시대 정치인 이미지만 고착시켰다”고 아쉬워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온갖 구설이나 의혹도 반 전 총장의 아픈 부분이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전부터 ▲동생과 조카 뇌물사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금품 제공 의혹 등에 휩싸였다. 귀국 후에도 ▲위안부 합의 말바꾸기 논란 ▲에비앙 생수 논란 ▲철도 발권기 2만원 투입논란 ▲현충원 방명록 메시지 컨닝 논란 ▲꽃마을 환자 배식 턱받이 논란 ▲퇴주잔 논란 ▲청년 실업과 관련해 ‘일없으면 자원봉사’ 발언 논란 ▲위안부 합의 말바꾸기 논란 ▲기자들 향한 ‘나쁜 놈’ 발언 논란 등 거의 매일 논란에 휩싸였다.
반 전 총장 측에서는 과도한 언론의 관심이 빚어낸 오해, 귀국한지 얼마 안 돼 발생한 실수라는 반론이 나온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후보로서의 기본기 및 준비부족 등으로 발생한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이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준비가 안 된 분이 서두르기까지 하니까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지도자는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는가. 참을 때는 참아야 한다. 대가를 치를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대통령 후보를 생각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본인이 대선에 대한 충분한 생각을 못하고 주변인들 부추김에 나온 것 아닌가”라며 “지금까지 나타난 행보만 보면 딱히 파괴력 있는 후보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반 전 총장이 지지율을 반등시킬 요인을 놓고 정치권 인사들은 한 목소리로 어디가 됐든 기존 정당 합류 필요성을 말했다. 보수진영 관계자는 “반기문 캠프를 보면 정치를 모르는 외교관, 올드한 MB계 인사, 목소리만 큰 정치 낭인들이 주축”이라며 “후보의 부족한 부분을 조직이 보조해야 하는데, 지금은 조직이 후보의 부족함을 극대화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 앞에서 이 전 대통령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