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 대목이 코앞인데"…전통시장 찬바람만

입력 : 2017-01-23 오후 4:21:42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35년간 장사하면서 올해처럼 힘든 적이 없어요. 설이 코앞인데도 손님 하나 없어요. 한산하다 못해 죽을 지경입니다."
 
설 명절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20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한 전통시장. 설 대목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했다. 경기가 어려운 데다, 물가마저 폭등하면서 '명절 특수'는 실종됐다.
 
20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한 전통시장. 설 명절을 코앞에 뒀지만 여전히 한산한 분위기다. 사진/뉴스토마토
 
전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채소값에 이어 식용유와 계란 가격도 너무 올라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한 근에 1만2000원 받았던 것을 1000원 올렸다. 가격을 올리면 손님만 떨어지니 인건비만 줄고 있다"고 푸념했다. 바로 옆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도 "월매출이 300만원이었다면 최근에는 100만원도 못 팔고 있다"며 "명절이 가까워졌지만 예전 같지 않다. 대목 기대보다는 쌓아 놓은 과일을 다 팔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 여파에 계란이 '금란'이 되면서 상인들의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었다. 기존 4500원하던 계란 한 판(30알)은 이날 1만2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노점에서 계란을 파는 80대 노인은 "계란을 구할 수가 없어서 한동안 장사를 접었다"며 "어느 정도 물건(계란)을 마련해놨는데 다 팔리고 나면 또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터무니없이 오른 계란값에 손님도 쉽사리 물건을 집어들지 않는다. 상인도, 손님도 그저 계란만을 탓할 뿐이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전통시장 내 상점. 의류, 장신구 등을 주로 판매하는 이곳에는 오가는 사람조차 보기 힘들다. 사진/뉴스토마토
 
전통시장 내 의류와 가방, 장신구 등을 파는 상점들의 사정은 더 나빴다. 그나마 네다섯 명의 손님이 있었던 1차 식품이 판매되는 골목과 달리 의류를 판매하는 상가에는 손님 한 명 없이 찬바람만 돌았다. 과거 아이들을 위한 설빔을 사느라 붐볐던 아동복 코너는 손님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다. 상인들은 한 곳에 모여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펼치고 점심을 해결했다. "밥값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한 상인의 말은 설 표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에서 35년간 장사해온 이모씨는 "이제 전통시장에서 어린이 수요는 찾기 힘들다"며 "지난해 상가 내에 있는 서점이 폐업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장사했던 문구점 등도 문을 닫았다. 아이를 데리고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30여개 상점이 밀집해 있는 상가 내에 아동의류를 판매하는 곳은 단 한 곳 뿐이었다. 그는 "의류를 파는 점포는 개시도 못하고 문 닫는 날도 많다"고 귀띔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전통시장. 설 대목을 앞뒀지만 이 곳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진/뉴스토마토
 
또 다른 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국에 한파가 몰아친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용문동의 한 전통시장. 설 명절을 앞둔 주말임에도 한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드문드문 사람들의 발걸음은 이어졌지만 활기를 띨 정도로 복잡하지는 않았다. 평일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갑자기 날씨까지 추워져서 그런지 주말이라고 손님이 더 많지 않다"며 "더군다나 가격을 물어보기만 할 뿐,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명절 특수를 일찌감치 포기한 상인들도 있었다. 또 다른 상인은 "워낙 경기가 안 좋다보니 명절 대목을 포기한 지 오래"라며 "시장 안에도 지금 반년째 문을 열지 않는 곳도 있고, 권리금 없이 가게를 내놓은 곳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를 운영하자니 장사가 안 돼 빚만 늘고, 그렇다고 접자니 불황에 장사하려는 사람도 없어 점포가 나가질 않는다"며 하소연했다. 현상유지조차 어려운 악순환이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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