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기저기서 기성 정치인들에 반기를 드는 유권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진력이 난 시민들의 정치 불신·혐오가 임계점을 뛰어넘어 분노로 치닫는 중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은 우리가 과연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분노해야 하는지 여부다.
정치는 차이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이미지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여론몰이를 하기 위해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한다. 텔레비전의 출현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후보의 옷차림과 자세, 행동, 연설내용 하나하나는 주도면밀하게 준비되고 치밀하게 계산된다. 이와 같은 후보의 이미지는 대통령 선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절대적이다.
지난 2012년 한국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은 박근혜 당시 후보의 이미지를 만들어 마케팅에 사용하는데 집중했다. 그 당시 박 후보 이미지 만들기에 앞장섰던 유승민 의원은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할 세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째, 국가관과 애국심이 정말 투철하다. 둘째, 원칙과 신뢰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셋째, 정말 깨끗한 분이다”. 유 의원은 “이분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의 부패하고 부조리한 문제를 깨끗하게 청소할 것”이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당시 새누리당 선거 캠프에서도 박 후보를 ‘원칙과 신뢰’의 화신으로 부각시켜 어필했고 많은 유권자들은 이를 철썩 같이 믿고 지지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그런 이미지는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허구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러한 점은 박 대통령이 지난 25일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운영하는 인터넷 TV에 출연하며 다시 한 번 신랄하게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것 같다며 자신의 잘못을 전면 부인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태극기집회 참석자수가 촛불집회의 2배”라는 진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지어냈다.
이처럼 선거가 만든 정치인의 이미지는 사실과 180도 다를 수 있다. 이런 예는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주 프랑스에서도 정치인의 만들어진 이미지 앞에 유권자들은 배신의 상처를 맛봐야 했다. 문제의 주인공은 우파의 대선 주자로 뽑힌 프랑수아 피옹. 피옹 후보는 그간 투명하고 정직한 정치인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우파 오픈프라이머리에서 라이벌인 니콜라 사르코지와 알랭 쥐페를 물리치기 위해 그는 ‘정직성’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피옹은 자신을 ‘미스터 투명성(Monsieur tranceparence)’과 ‘미스터 준엄성(Monsieur rigueur)’으로 명명하고 매번 정치적 발언을 할 때마다 이를 앞세워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다. 피옹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르 몽드> 신문이 유권자들에게 그를 지지한 이유를 물었을 때 정직성을 첫 번째로 꼽은 것을 봐도 그의 이미지 메이킹은 가히 성공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과 2개월 만에 이는 허구로 드러날 위기에 놓여졌다. 지난 25일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르 카나르 앙셰네>는 1면에 페넬로프 사건(L'Affaire Penelope)을 전격 게재하며 피옹의 부정직성을 고발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피옹 후보는 수 년 간 자신의 부인 페넬로프를 보좌관으로 거짓 채용해 임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공금을 횡령했다. 그 총액이 약 50만 유로(한화 6억2500만 원)에 달한다.
이를 놓고 피옹 후보는 지난 26일 밤 민영방송 <TF1>에 출연해 “페넬로프는 내가 국회에 처음 입성한 1981년부터 보좌관으로 옆에서 줄곧 일해 왔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만일 자신의 해명이 거짓으로 판명돼 기소된다면 대선후보에서 사퇴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프랑스 검찰은 사건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바로 조사에 착수했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일파만파 커지는 중이다.
거짓 이미지가 불러온 정치 스캔들 앞에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는 형국이다. 다만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과연 정치인들이 다른 시민들보다 더 거짓말쟁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마 귀에놀레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정치인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팔고자 하는 사람들인 광고업자나 상거래업자보다 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적 거짓말은 조작된 스팟광고와 어느 일요일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친절한 허풍쟁이의 말 중간 정도에 속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러한 속성을 인정한다면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분노하고 에너지를 낭비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기당하지 않기 위해 정치인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 첫걸음은 후보들을 꼼꼼히 따지고 두드려보면서 과대광고에 절대 속지 않는 것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