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2017년 국제정세전망’을 내놓으면서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의 ‘초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Hyper-Uncertainty)’를 인용했다. 2017년은 지독히 예측 불가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이켄그린은 올해가 갤브레이스의 명저 ‘불확실성의 시대’ 발간 40주년임을 상기시키며, 그가 내년에 똑같은 책을 쓴다면 오일쇼크로 불확실하다고 했던 1970년대는 오히려 ‘확실성의 시대’라고 기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올해 국제관계에 있어서 불확실성은 강력히 예측되고 있음에도, 국제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변수인 중·러 에너지 협력문제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역학관계나 여파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또는 예측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국제 에너지 전문가 백근욱 영국 옥스포드 에너지연구원 선임연구원(연세 SERI-EU센터 겸임교수)의 분석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트럼프, 국제에너지 지정학의 또 다른 ‘판도라 상자’ 열려고 한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 에너지 지정학의 또 다른 판도라 상자를 열려고 한다. 트럼프가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CEO)인 렉스 틸러슨을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러시아 카드를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분명한 의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에너지 지정학은 올해 국제관계의 불확실성을 한층 더 극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과거 1970년대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당시 소련(현 러시아)를 견제했다. 44년이 지난 2017년 미국이 러시아 카드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016년 중·러 에너지 협력에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 첫째는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 변화였다. 러시아가 2000년대 동시베리아 송유관(Eastern Siberia Pacific Ocean, ESPO) 때 활용했던 중국·일본 경쟁 카드처럼, 처음으로 중국에게 인도 카드를 과시해 중국시장에만 의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실제 2016년 3월, 러시아의 국영석유사 로스네프트(Rosneft)는 동시베리아 석유자산의 지분을 인도에너지회사 컨소시엄에 판매하는 데 동의했다. 인도의 국영 석유회사 ONGC가 포함된 세 개 기업 컨소시엄은 Taas-Yuriakh 유·가스전(oil·gas filed)의 29.9% 지분과 Vankor 유전의 23.9% 지분을 취득했다.
미국, 1970년대 중국 관계정상화로 러시아 견제, 2017년 대러 협력으로 중국견제
문제는 당시 중국의 북경 가스그룹이 지분인수를 위해 실사 마지막 단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로스네프트는 173mt(metric ton, 1000㎏을 1톤으로 하는 중량단위)의 석유와 콘덴세이트, 그리고 115bcm(billion cubic meter, 1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보유한 Verkhne-Chonsokye 유·가스전 대신, 북경 가스그룹이 실사를 마무리하고 있던 167mt의 석유와 콘덴세이트, 181bcm의 가스를 매장한 Sredne-Botuobinskoye 유·가스전 및 콘덴세이트전의 일부인 Taas-Yuriakh 유·가스전을 인도 컨소시엄에 할애했다. 이는 인도 컨소시엄이 Taas-Yuriakh 유·가스전 자산을 먼저 매입하도록 러시아가 인도를 부채질했다고 해석해도 무방한 이유다.
2016년 중·러 에너지 협력에서 나타난 두 번째 중요한 변화는 120억 달러의 가스대출(loan for gas)과 관련이 있다. 중국이 대규모 원유대출(loan for oil)은 수시로 진행해 왔지만, 가스대출에 대해선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관행을 깨고 중국은 중·러 가스협력 강화를 위해 러시아의 야말LNG 개발에 대한 가스대출 계획을 획기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2016년 4월29일, 야말LNG는 중국수출입은행 및 중국개발은행과 15년간 총괄 93억 유로, 98억 위안 상당의 신용거래에 합의했다. 남중국해의 영토분쟁이 심화될 경우, 중국 지도부는 파이프라인가스와 북극지역으로부터의 LNG공급의 역할을 늘리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통해 중·러 가스협력 또한 상당 수준 강화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LNG나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입되는 가스의 중요성이 중국의 가스 확장에 따라 향후 몇 년간 지속적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러시아의 북극지역 LNG가 향하는 시장은 아시아 지역인데, 이곳은 미국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시장이다. 향후 러시아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 전쟁터가 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가운데 파나마 운하 확장은 미국 멕시코만 연안인 걸프만(Gulf Coast)에서부터 아시아 주요 시장까지의 LNG 수송 시간과 운송 비용을 줄여 주고, 과거 지역화된 LNG시장에 추가 진입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LNG 무역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일본, 한국, 중국, 타이완의 동북아시아 4개국은 국제 LNG수입의 3분의2 가량을 차지한다.
에너지 분야에서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도구는 대규모 미국산 LNG를 아시아 가스 수요자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2020년까지 미국은 호주와 카타르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LNG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액화 용량의 4.0 bcf/d(billion cubic feet per day, 1일당 생산 큐빅피트)이상을 아시아 시장과 20년 장기계약을 맺고 있으며, 그 중 3.2 bcf/d는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와 계약돼 있다. 모든 계약된 물량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다고 가정할 때, 미국 에너지정보청 분석에 따르면 운하를 통과하는 LNG선박은 2021년까지 연간 550척 이상, 하루 1~2척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 중국 러시아 카드와 그 이해상충 변수
2017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과 중국간 패권다툼이 격화될 것이다. 트럼프가 엑손회장 틸러슨의 국무장관 지명을 관철시켜 미국의 대중국 러시아 카드 활용이 본격화되면 우선 당장에는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해상충의 변수가 예상외로 크게 나타날 것이다. 러시아는 엑손에 러시아 북극지역 상류부문 투자와 관련해 좋은 기회를 제시함으로써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를 실제적으로 와해시킬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럽시장으로의 가스수출에 있어 미국과의 경쟁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의 아시아 시장에 대한 LNG공급은 러시아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 매우 큰 위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크레믈린으로서는 중국과의 거대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계약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일 러시아가 보다 높은 가격을 고수하고 유럽에서의 시장 지분을 놓으려 한다면, 미국의 LNG 수출 용량은 75%에 달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셰일오일에 대해 대응했던 것처럼 러시아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낮출 경우 미국의 가동률은 40%에 머무를 수 있다.
러시아는 내수가 감소하고 아시아에 대한 LNG 프로젝트가 기대했던 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이상으로 유럽을 필요로 한다. 유럽연합(The European Union)은 가스프롬의 가스 판매의 약 80%를 차지한다. 가스프롬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15년까지1MMBtu(Million Metric British Thermal Unit) 당 평균 가스 생산 비용은 1.2달러에서 0.84달러까지 내려갔다.
즉 가스프롬은 미국 LNG 수출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유럽 가스시장에 진입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미 포화상태의 유럽 가스시장은 가격경쟁을 통한 러시아의 가스수출확장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아도, 미국의 대유럽 LNG수출가격이 러시아와 비교해 가격 경쟁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미국 LNG의 유럽수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무역전쟁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사평에서 “트럼프의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 지명은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치겠다는 신호”라며 많은 중국인들은 대만에 우호적인 나바로를 반 중국학자로 간주한다고 비판했다.
대중 강경파인 나바로 교수가 미국 통상정책의 ‘황제’로 등극할 것으로 예고된 작년 12월21일, 그의 지휘를 받게 될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를 가짜제품 판매와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악덕시장’(Notorious Markets) 업체로 분류했다. 중국을 상징하는 간판기업을 5년 만에 블랙리스트에 다시 올린 것이다.
결국 세계 최강대국들이 자국 이익 중심으로 외교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전통적인 의미의 동맹이란 개념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 우선을 강조하는 트럼프정부에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강대국 틈바구니에 위치한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으로 나타날 지 한국정부는 냉철하게 살피고 한국의 장래이익을 염두에 둔 대안들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2017년 1월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가 마감 단계라고 말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구체적인 북핵 해법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발언을 종합하면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요약된다. 중국을 압박하든 설득하든 북한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미국이 주도하기보다는 한국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미국과 중국과의 동시 협상을 통해 타결하는 경우가 이상적인 까닭에 한국정부는 미국이 생각하지 못한, 중국 설득 카드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미국이 생각 못한 중국설득 카드는 “산동반도·경기도 잇는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
차기정부 대외정책의 최우선 정책 중 하나는 분명 북한의 핵개발 저지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일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국의 도움없이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차기정부는 반드시 중국에 최소한의 신뢰를 가져다줄 이니셔티브를 미리 제시해야 한다.
2016년 미국 LNG 수출이 시작되었고, 2017년 올해에는 러시아의 북극동토에서 출발하는 야말LNG수출이 개시될 것이다. 중·러 가스협력의 결과물인 Power of Siberia 1 가스수출이 동시베리아로부터 중국 발해만 지역으로 2020-2021년 본격적인 공급이 시작되기 전에 오랫동안 논의해 온 산동반도와 경기도를 잇는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되면 한반도와 중국 발해만 지역을 잇는 원형가스파이프라인 건설의 첫 번째 단계 작업이 완료돼, 북극과 동시베리아로부터 중국에 공급되는 LNG와 파이프라인 가스를 한국과 중국이 스왑형태나 협력형태로 활용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미 2012년 봄 중국석유회장이 한국석유공사사장에게 이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제안을 했었지만,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한-중 해저파이프라인 건설, 한반도통일을 위한 중간자적 입지 확보 가능
한국의 뒤늦은 화답은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작년 4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장은 “(한·중 양국이)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를 주고받게 되면 가스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도입 단가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서해 가스 파이프라인이 부설되면 한국은 ‘에너지 고도’에서 탈피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LNG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에 가로막혀 러시아나 중국 등 대륙을 통한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이 막혀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한·중 간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면 한국이 가스가 넘쳐날 때 중국에 수출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에는 중국으로부터 도입할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는 ‘가스 가격을 낮춰 달라’고 하면 중동 산유국들이 ‘공급을 끊겠다’고 위협할 수 있었지만, 파이프라인이 부설되면 이런 협박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공사의 화답논리는 한·중 해저파이프라인의 경제적 입장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한반도 통일문제와 연관지어 이야기 하면, 해저파이프라인 건설은 한·중·러 파이프라인 협력의 문을 열어 전통적 한·미·일 안보동맹에 더해 한·중·러 파이프라인 내지 에너지협력동맹의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이 한반도통일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중간자적 입장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차기정부가 동전의 뒷면을 바라보는 혜안으로 이 화두를 택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엑손모빌 CEO 출신인 렉스 틸러슨 신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취임선서 후 발언하는 모습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