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중도금 마련을 위해 신용대출에까지 손을 뻗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 제도권 금융에 비해 대출금리도 높고 대출 규모도 작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중도금 납부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 이에 따라 올해 건설사의 캐시카우로 꼽히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도 계약 포기 속출 등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7일 건설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중도금 대출금리는 지난달 3.5%대를 돌파하고 이달 4%대까지 높아졌다. 일부 은행에서는 5%대 금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 비해 최대 2%p 높아진 것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수차례에 걸쳐 대출 문턱을 높인 결과다. 지난해 8월 중도금 대출 강화를 시작으로 1금융권에 이어 2금융권에도 주택담보대출 상환능력 심사와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또 올해부터는 집단대출 중 잔금대출에 대해서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아나가는 원리금 상환 방식이 도입돼 대출금 상환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됐다.
중도금 대출 금리가 치솟으면서 건설사들도 비상이 걸렸다. 청약 당첨자 대부분이 은행 대출을 통해 중도금을 납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도금 대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분양 증가로 이어지고 결국엔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년 전만 해도 대형사들은 중도금 대출 시 별 문제없이 대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는데 요즘엔 계약률이 최소 70%는 넘어야 중도금 대출 승인이 난다"며 "11.3 대책으로 분양시장이 가라앉고 있어 계약률을 높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마지노선인 계약률 70%선만 넘으면 1금융권이나 2금융권에서 대출 승인이 가능하다. 정 안 될 경우엔 건설사 자체 신용을 담보로 중도금 대출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상장 건설사 대부분은 지난해 주택시장 호조로 실적이 개선되면서 재정상황과 신용등급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버틸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방 중소 건설사나 미분양이 많은 지역에서는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주택협회 조사 결과 지방 소재 A건설사의 사업장은 100% 계약이 완료됐지만, 지방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집단대출을 받아주는 시중은행을 찾지 못해 중도금대출 보증이 불가능한 제2금융권과 대출을 진행했다. 다른 B건설사가 분양한 아파트는 공공택지 사업장으로 계약률도 90%를 넘었지만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이 거절된 사례도 있다.
천안지역 중소 건설사 관계자는 "중소 건설사들은 신용등급이 아예 없거나 낮은 경우가 많아 자체 보증도 불가능하다"며 "중도금 납부일을 연기하고 2금융권이나 지역 은행들을 찾아다니며 중도금 대출을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전했다.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이 여의치 않자 수분양자 개인의 신용대출을 권유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일반 분양 보다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등 정비사업 현장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대형 건설사가 시행과 시공을 맡아 진행하는 일반 분양과 달리 해당 조합이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담보 능력이 떨어져 금융권 대출을 받기가 더 어려운 까닭이다.
보통 집값의 60~70%를 차지하는 중도금이 수억원 규모인데 비해 개인 신용대출은 1억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식이다. 1금융권에 이어 2금융권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DSR) 제도가 도입될 경우 신용대출 규모는 더 적어질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1.3 대책으로 1순위 청약 자격이 강화되면서 정비사업 위주로 올해 사업 계획을 마련했는데 대출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면서 정비사업까지 불똥이 튈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어 "하반기부터 대규모 입주물량이 시작되는데 잔금 대출까지 막힐 경우 집값 하락과 미분양 증가로 이어져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시중은행들이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을 꺼리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분양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의 한 은행 창구에서 시민이 대출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