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권 승계 제동…'시계제로'

삼성전자 인적분할 등 지주사 체제 전환 앞두고 올스톱…"지금으로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입력 : 2017-02-19 오후 5:58:31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제동이 걸렸다. 삼성은 당분간 특검 수사와 향후 있을 재판 등에 집중하느라 삼성전자 인적분할 등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추진할 여력이 없다. 3세 승계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 인식이 굳어지면서 주주총회 등 분할·합병 절차에서 주주 찬성표를 얻기도 어려워졌다. 당장 여야 합의 가능성이 높은 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등 일부 상법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를 통과하면 지배구조 리스크는 가중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삼성전자 인적분할이 지연되는 속에 자사주 규제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체제 전환 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게 돼 사실상 승계 진로는 막히게 된다.
 
삼성전자는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을 다루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일정상 3월 주총에서 안건을 다루려면 이달 이사회 상정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결정권자이자 삼성전자 등기이사로서 이사회 구성원인 이 부회장이 구속됐다. 더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뇌물죄 혐의가 구속사유로, 이와 연결된 삼성전자 인적분할에 반대할 여론 부담도 커졌다. 해외부패방지법(FCPA) 등의 영향을 받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3월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효소송 판결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은 지난해 말 1심 선고를 미루면서 특검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재판을 진행키로 했다. 현재 흐름으로는 합병 무효 소송도 삼성에 불리해졌다. 최종 무효 판결이 이뤄지더라도 합병이 취소될 확률은 낮지만 막대한 벌금과 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 줄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소야대의 국회 지형과 재벌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을 고려하면 그 사이 상법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대두된다. 특히 여야가 긍정 검토키로 합의한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법안은 2월 임시국회 내 처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전자투표제의 경우 주총장에 출석하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안건에 대한 찬반 투표가 가능하다. 삼성전자 인적분할을 비롯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여러 주총 안건을 치러야 하는 삼성으로선 부담이 커지는 대목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식 1% 지분 소유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한 소송을 허용해주는 제도다. 이는 삼성 승계 과정에 동원된 여러 계열사들에 대한 소송 리스크를 높인다. 특검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도 뇌물액으로 판단해 추후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재벌기업에도 리스크가 번질 수 있다. 
 
특히 ‘이재용법’으로 불리는 자사주 신주 배정 금지 등 자사주 규제 법안이 국회서 가결되면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13.2%의 자사주는 분할 후 지주회사가 되는 기업의 신주 배정을 통해 의결권이 생긴다. 법안은 이를 원천 차단한다. 이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자사주만큼 지분을 늘리려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을 고려할 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다만, 이 법안은 경영권 불안 등을 이유로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으며, 바른정당도 법 통과 후 시행까지 1년간 유예기간을 두는 등 중재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간 이견이 있는 만큼 2월 임시국회에선 법안 처리가 유보될 수 있지만, 삼성으로선 인적분할이 지연되는 동안 큰 폭탄을 안고 가야 한다.
 
그럼에도 삼성은 대응 여력이 없다. 삼성 관계자는 19일 “뇌물죄 혐의 소명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다른 문제를 다룰 틈이 없다”고 말했다. 관계자 등에 따르면 앞으로 남은 지배구조 현안들이 모조리 뇌물죄 혐의와 엮이면서 일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특검은 삼성물산 합병 건에 집중했던 1차 영장청구 때와 달리 2차 영장청구에서는 순환출자 해소, 중간금융지주,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특혜 건 등 이 부회장의 승계와 연결된 포괄적인 뇌물 혐의로 수사를 확대했다. 여기엔 참고인으로 소환됐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조력이 컸다. 김 교수는 삼성의 승계 과정을 '기-승-전-결'로 분류해 현재 ‘전’ 단계 앞에서 멈춰선 것으로 봤다. 1996년 이 부회장이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한 것이 ‘기’,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승’, 최종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전’인데 특검 수사로 힘들어졌다는 판단이다. ‘결’은 이 부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서의 경영능력을 입증해 총수로서 인정받는 과제라고 지목했다.
 
김 교수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특히 금산분리 규제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며 “국내 법뿐만 아니라 보험회사에 대한 국제적인 회계감독 기준들이 강화되고 있어 이대로 가면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유일한 탈출구가 지주사 체제 전환인데, 이 부회장이 사회와 시장의 신뢰를 잃어 분할·합병 등 수많은 주주총회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때문에 지금 상태에선 지주사 전환이 어렵다. 즉, 체제는 전환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는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이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지주와 삼성전자 중심의 일반지주를 만들어 수평이든 수직이든 연결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란 믿음을 시장에 쌓기 전엔 불가능하다”며 “소유구조 붕괴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 부회장이 그룹의 신뢰를 얻는 작업부터 먼저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와 함께 재벌 전문가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는 이번 스캔들로 ‘삼성특별법’이라는 인식이 커져 도입하기 어려워졌다”며 “삼성이 계획했던 대로 하기 어려워졌을 뿐이지, 지배구조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돼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재벌개혁 문제에 대해 차기 정부가 어떤 정책적 입장을 취하는지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가 불가능하도록 재벌개혁이 이뤄져야 기업도 국가도 좋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삼성 안팎에서는 미래전략실 해체의 경우 이 부회장이 사전에 준비해온 과제이며 국회 청문회에서 한 대국민 약속이기 때문에 구속으로 지연되더라도 결국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적으로는 사장단 등 인사 적체가 가중되고 그로 인한 조직 개편이 미뤄지면서 당분간 현상유지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국내 해외기업 인수 사례 중 사상 최대 금액인 80억달러를 쓰는 하만 인수 건은 이 부회장의 구속과 일부 주주들의 반대 등 난항에도 하만 임시주주총회를 통과해 그나마 한숨을 돌리게 됐다. 삼성 관계자는 "특검 연장과 나머지 경영진(최지성·장충기 등)의 기소 여부 등 변수 투성이"이라며 “지금으로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총수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으면서 "경영진들도 좌불안석"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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