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들은 신하들이 올린 상소문이나 보고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했고,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그런 과정에서 군신 간에 주고받은 대화는 어떤 문장으로 서술되었을까. 좀 더 호기심을 작동시킨다면, 조선시대 왕의 일상은 어떠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더불어 그 당시의 날씨나 강수량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만일 그런 기록이 존재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지는 욕구를 억누를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제반 사항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다. 그 '승정원일기'가 번역된다고 한다. 그것도 인공지능(AI)으로 말이다. 승정원은 조선시대,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여러가지 사항들을 임금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아보던 곳으로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한다. 왕의 교서나 신하들이 왕에게 올리는 글 등 모든 문서가 승정원을 거치게 되어 있었기에 그 역할이 중대했던 기관이다.
이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글자 수는 무려 2억 4250만자. 권수로는 3243권이다. 세계의 모든 역사기록물 중 최대의 기록물이다. 이미 번역된 것으로 우리의 귀에 익숙한 '조선왕조실록'의 글자 수인 4964만6667자와 비교해도, 그 5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승정원일기'는 일반인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기록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사실은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중의 하나다. 아쉽게도 1994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현재 20%의 번역 진척 상황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의미 있는 역사기록물이 아직도 번역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지만, 사람이 하면 45년은 걸리는 이 번역작업이 AI를 통하면 18년 후에는 마칠 것으로 예상이 된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완역을 기다릴 뿐이다. 다만, 아쉽게도 '승정원일기'에는 519년이라는 조선의 기간 중, 288년간의 기록만이 남아 있다. 조선 개국 초부터 매일 작성된 것이지만,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대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인조 원년(1623)부터 고종 때(1910)까지의 기록만 남아 있다. 전부 남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그런 사실(史實)에서 연유한다.
무엇보다 이번에 진행될 '승정원일기'의 번역 작업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세계 최대의 양을 가진 한문으로 된 역사기록물을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으로 완역한다는 데에 있다. 물론 그것은 인공지능이 과연 얼마나 유려하게 우리말 문장으로 현대인에게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품고 있기도 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조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승정원일기'는 왕의 성격이나 취향, 건강 상태와 같은 임금 개인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기후와 같은 사적 가치를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2월에 첫 결과물이 나온다고 하니, 벌써부터 번역 자료를 읽을 수 있다는 흥분과 기대가 밀려온다.
이번 번역 사업과 관련하여 필자가 감히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은, 이 번역을 계기로 2007년과 2009년 2011년 2013년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 의궤', '동의보감', '일성록', '난중일기', '한국의 유교책판'과 같은 역사기록물의 번역이 우선적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미 2001년과 2007년에 등재되었던 '직지심체요절'과 '고려 대장경판 및 제경판' 등의 번역도 이루어져, 하루빨리 우리 현대인들과의 시대적 소통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혹여 인공지능 번역으로 인적 자원인 번역자의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기우에 그치리라 생각된다. 인공지능의 번역은 초벌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의 뛰어난 기록문화유산이 하나 둘씩 번역되어 일반 국민들에게 읽혀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유능한 번역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사업의 확장성도 기대해본다.
예상하건대, 이런 기록문화유산의 번역·보급은 향후 ‘k-드라마’와 같은 소재로도 활용되어 한류의 확장에도 크게 기여할 콘텐츠가 될 가능성도 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에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던 '대장금'도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몇 글자 안 되는 ‘장금이라는 의녀(醫女)’의 기록에서 출발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일본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