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스노든이 내부 고발자가 된 이유

입력 : 2017-02-16 오전 6:00:00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한 공포 영화가 가장 무섭다. TV에서 귀신이 기어 나오고, 좀비가 아무리 잔인한 짓을 해도 무섭지 않다. 조금 징그러울 뿐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가 스릴러의 고전이 된 이유는 친숙한 일상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영화 <싸이코>와 <새>를 생각해보라. 매일 사용하고(샤워실) 마주치는(새) 친숙한 대상이 어느 날 나를 위협할 때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마찬가지 이유로 일상까지 통제받을 때 우리는 가장 큰 불편을 느낀다. 부끄러운 행위나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면 그만큼 불편한 게 없다. 감옥이 가장 불편한 이유는 물론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못지않게 내가 밥을 먹고, 씻고, 옷을 입고, 잠자는 그 모든 행위를 감시받아야 하는 이유도 크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을 생각해보라. 그가 상상하는 자유란 아무도 자기를 지켜보지 않는 곳에 내가 있을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감시와 통제는 권력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감시와 통제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킬 수 있다. 그들에게 통치란 누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누가 다른 말을 하는지 찾아내고 격리하는 행위다. 국가만 그런 게 아니다. 직원들의 다른 생각과 다른 말을 싫어하는 사장일수록 다양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을 도입한다.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CCTV가 아니다. 개인의 삶과 회사의 일을 일치시키면 된다. 지금 당신이 다니는 회사를 보라. 만약 주말마다 함께 등산을 가자고 직원을 불러내는 사장 아래서 일하고 있다면, 빨리 다른 회사를 찾아보는 게 좋다.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내부 고발자가 된다. 국가의 감시와 통제 시스템이 개인의 일상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세계 어느 곳, 누구라도 감시할 수 있고 실제 그런 행위가 무작위로 벌어진다. 백업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이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스노든은 갈등한다. 사랑하는 연인까지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스노든은 분노한다. 그 갈등과 분노의 지점에 ‘일상’이 있다. 일상은 허락할 수 없는 경계선이다. 국가가 그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스노든>에 비친 스노든은 보수주의자에 가깝다. 그는 “사람을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려고” 그린베레에 입대한다. 훈련 중 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그는 적과 맞서 싸우는 특수부대원이 됐을 것이다. 결국, 그는 CIA와 NSA의 정보 담당자가 된다. 총알 대신 정보가 난무하는 곳이 그의 최전선이다. 그의 무기는 총이 아니라 정보통신 기술이다. 하지만 “사람을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려고” 싸운다는 신념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 모든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스노든은 2013년 6월 영국 가디언을 통해 NSA의 ‘프리즘 프로젝트’를 폭로한다. 미국 NSA는 합법적이거나 승인된 절차를 밟지 않고 모든 사람의 정보를 수집했다. 이메일 해킹은 물론 SNS 계정을 통해 개인 정보를 뒤졌다. 당사자뿐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SNS 친구, 또 그 친구들의 친구들 신상정보까지 뒤졌다(이렇게 3단계만 거쳐도 그 대상은 순식간에 수십만, 수백만 명이 된다). 전화 도·감청은 애교에 가깝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정작 이 프로젝트를 통한 개인정보 수집은 적성국이 아니라 자국과 우방국에서 가장 많은 건수를 기록했다.
 
비밀을 폭로한 뒤 스노든은 이렇게 말한다. “이건 테러의 문제가 아닙니다. 테러는 변명일 뿐이죠. 이건 경제와 사회 통제에 관한 문제예요. 그런데 실제 사람들이 엄호하고 있는 건 정부의 패권이죠.” 영화 막판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변한다. “국민은 정부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원칙을 기반으로 미국이란 나라가 세워진 겁니다. 우리가 국가의 안보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그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프로그램 하나로 전 세계를 감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집집마다 거리마다 설치된 텔레스크린이 감시수단이자 통제수단이었다. 21세기 현실에서는 유·무선으로 연결된 인터넷망과 검색어 하나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빅데이터가 텔레스크린을 대체했다. 감시와 통제는 이제 일상의 공포가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일상을 소재로 한 공포 영화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영화 스노든을 보고 나는 노트북 웹캠을 검정 테이프로 막았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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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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