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3월 석유화학분야 마이스터고로 새롭게 문을 연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가 올해로 두 회째 졸업생을 배출하며 새로운 인재육성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국내 첫 석유화학 마이스터고인 이 학교는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 기업들이 입주한 여수국가산단에 자리하고 있으며, 공정운전과·공정설비과·공정계전과로 세분화 한 커리큘럼으로 미래 '기술 명장'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취업률도 당초 기대보다 높은 90%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초대 교장으로 취임해 업계의 경험을 교육환경에 잘 접목해 여수석유화학고의 기틀을 닦고, 재공모를 통해 2019년까지 재임하게 된 조영만 교장(60·사진)을 만나봤다.
조영만 여수석유화학고 교장이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석유화학 마이스터고인 '여수석유화학고'의 특징은.
여수석유화학고는 국내 유일의 석유화학 마이스터고다. 싱가포르도 석유화학 교육과정이 잘 돼있지만, 한 학교 전체가 석유화학 전문으로 지정된 것은 세계에서도 유일한 것으로 안다. 우리학교는 석유화학분야에 차별성을 갖고 실무형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인성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석유화학 분야에서 오래 근무해보니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는 '인성'이다. 인성에도 방향이 있는데 우리학교는 '긍정인, 전문인, 세계인'이라는 명확한 인재상을 갖고 있다. 특히, 어떤 일이든 안 되는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최대한 할 수 있는 대안을 찾도록 교육하고 있다. 긍정적인 마음은 사회에 나가서 더욱 중요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무감독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시험은 취업과 연결되기 때문에 아주 민감한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유지되고 있다. 이 역시 인성교육의 일환이다. 전국 마이스터고 중에는 최초로 시도했다.
높은 취업률의 비결에 대해 달라.
군에 입대한 학생들을 제외한 올해 취업 대상인원 89명 중 80명이 취업했다. 취업률 90%다. 대기업으로 간 학생들은 총 33명,
LG화학(051910) 6명·
롯데케미칼(011170) 5명·여천NCC 3명·GS칼텍스 2명 등이다. 공기업에 취직한 학생은 한국수력원자력·한국가스안전공사·한국서부발전·
한국가스공사(036460)·한국동서발전·한국석유관리원 등 총 27명, 중견·중소기업에도 총 20명이 합격했다.
석유화학은 연봉이나 근무조건, 미래 비전 등 모든 면에서 국내 산업 중 높은 부가가치를 내는 최고의 업종이라 뿌듯한 마음이다. 학교 때부터 회사에 필요한 종합 스펙을 갖추기 때문에 취업에 경쟁력이 있다. 올해는 특히 한국동서발전에서 2명을 뽑는 자리에 2명 모두 우리 학생들로 채워졌다. 발전회사나 조폐공사에서도 화공 전공 학생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기업들과 고용 협약이 돼있나.
기업들로부터 유휴 장비를 실습 설비로 기증 받거나 특강 등 협력은 하지만, 고정적으로 몇 명을 취업시켜주는 그런 협약은 없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공정 경쟁이다. 인기가 많기 때문에 그 만큼 경쟁은 더 치열하다. 취업률을 높이기에는 오히려 조선이나 전자가 나은 편이다. 여수산단은 규모는 크지만 장치 산업이기 때문에 협력회사, 유지보수업체 등을 뺀 채용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대기업 화학계열사에 취업을 시키는 비결은.
2015년 LG화학에 많이 취업하면서 물꼬가 트인 것 같다. LG화학 이후로 소문이 나면서 롯데케미칼, 여천NCC, 한화케미칼, 금호석유화학, GS칼텍스 등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해 1기 학생들은 대기업에 많이 취업을 하긴 했지만, 석유화학으로는 많이 가지 못했다. 일의 숙련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군 미필자를 잘 안 뽑는 분위기도 있었다. 학생들을 양질의 일자리에 더욱 많이 취업시켜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부임 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여수 산단의 공장장들과 산업협력 방안에 대해 회의를 한 것이었다. 각 회사들의 인사팀장들도 만났고, 한국석유화학협회의 사장단 회의에도 참석해 CEO들 앞에서 학교에 대해 브리핑도 했다. 국가가 돈을 들여 석유화학업종 인재를 양성토록 해 주는데, 이 재원들이 조선소나 자동차 등 다른 업종으로 가면 국가적 낭비 아니겠느냐고 설득한다. 학생 1인당 투자되는 예산이 3년간 6000만원 정도다. 이렇게 길러놓은 인재를 석유화학업계에서 채용하지 않으면 인사팀장의 직무유기 아닌가.
이미 취업이 연결된 회사들도 앞으로 채용 인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회사로 발을 계속 넓혀야 한다. 우리학교에서 바스프에 한 명 취업시키는데도 4년이 걸렸다. 올해는 여수 산단에 있지만 아직 취업이 한 명도 안된 '대림산업'이 주요 타깃이다(웃음).
LG화학 출신이라던데 어떻게 교장을 하게 됐는지.
LG화학에서 총 23년을 근무했다. 8년은 현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했고, 과장부터는 연수원에서 일하면서 신입사원 등을 교육했다. LG에서 연수원장까지 하고 퇴직한 이후 여수시테크니션스쿨 원장으로 3년 정도 있다가 교장공모제를 통해 4년 임기의 여수석유화학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원래 임기가 이번 달에 끝나는 데, 재공모를 통해 남은 정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됐다. 연수원이나 고등학교나 교육에 대한 철학은 비슷하다. LG화학은 내가 입사한 1983년에는 뒤에서 세번째 회사였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선두는 물론 '글로벌 탑 10' 화학회사로 성장했다. 혁신의 본산인 여수에서 학생들을 길러낼 수 있어 자랑스럽다. 나 역시 학생들처럼 공고에서 기계과를 전공했다. 바로 취업을 하려다가 뜻이 있어 조선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고, 이후 회사를 다니면서 전남대에서 경영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올해 여수석유화학고의 입학 경쟁률은 얼마나 되나.
올해 들어온 5기 학생들의 경쟁률은 1.9대 1이었다.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낮아졌지만 큰 의미는 없다. 처음 입학한 학생들의 중학교 내신은 상위 27% 수준이었지만, 대기업 취업률 소문이 나면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지금은 내신 컷트라인이 18~19%로 올랐기 때문이다. 내신이 안되는 학생들은 지원을 잘 하지 않는다. 내년엔 더 우수한 학생들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3년 동안 합숙 생활을 하기 때문에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남학생들은 대부분 졸업과 동시에 군대를 가는데, 제대하면 제일 먼저 오는 곳이 학교다. 취업지원 관리 때문에 졸업 이후에도 학교와 계속 연락을 한다. 일반 특성화고는 졸업한 뒤 바로 취업할 수 있지만, 석유화학 산업은 일의 숙련도가 중요해서 3년 정도는 연속 근무해야 일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회사에 합격을 한 후 군 복무를 한다. 3년간 학비와 기숙사비가 전액 무료이고, 각종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공부만 잘 하는 학생은 인정하지 않는다. 4인 1실을 하는 공동체 생활에서 친구들을 배려하는 것은 기본이다. 또 산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인데, 정리정돈이 잘 돼있지 않으면 걸려 넘어지는 등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보니 화장실이 너무 더러웠다. 그래서 만든 것이 '화장실 치킨파티'다. 일년에 4번 정도는 화장실을 깨끗이 치우고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함께 치킨을 먹는다.
교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석유화학 산업에 30년 가까이 몸을 담으면서 얻은 깨달음 중에 하나는 '회사는 종업원의 수준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인재를 갖고 회사를 운영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1차적으로는 신입사원을 잘 뽑아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처음부터 석유화학 산업에 종사하는 것을 목표로 들어오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인재들을 잘 양성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명품 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다. 최근 사장단들이 많이 바뀌면서 여전히 우리학교를 모르는 CEO가 많다. 내 인재들을 적극 홍보하는 것이 내 '미션'이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