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0대 초반의 젊은 예술가가 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이제 고인인 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다. 굶주림으로 인한 죽음이었기에 더 비통했다. 그의 죽음은 예술가가 마주한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으로 1년 동안 벌어들인 평균 수입은 1255만원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100만원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 이중에서도 국악인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갈수록 우리 전통문화가 위축되는 데다, 국악 자체가 대중들에게 생소하고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악인들의 설 자리는 극도로 좁아졌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자 퓨전 국악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또 다른 문제도 낳았다. 국악의 전통성을 저해한다는 것. 사회적기업 케이앤아츠는 국악의 전통성 보존에 중점을 뒀다. 국악을 통해 한국 문화유산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국악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게 케이앤아츠의 미션이다. 어려운 현실 앞에 선 김기범 대표를 만나봤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지난 27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위치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케이앤아츠는 동작구청으로부터 공간을 지원받아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2013년 6월에 설립, 퓨전음악공연 기획사이자 국악밴드 '비단'의 매니지먼트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11월에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다.
대중음악 떠나 국악으로
김기범
(사진) 대표는 케이앤아츠 설립 이전에 10년간 대중음악계에 몸담았다. 2000년 초반 그는 현재 국내를 대표하는 연예기획사 가운데 하나인 S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다. 음반 기획자로 5년을 근무한 후 계열사로 옮겨 4년간 드라마OST 제작 업무를 맡았다. 대중음악계에서 일해온 10년 동안 그는 오히려 대중음악과 멀어졌다. 해가 갈수록 아티스트들의 노출은 과해지고, 음악은 단순해졌다. 예전의 감수성도, 깊이도 없었다. 김 대표가 마주한 대중음악계의 현주소였다.
"제 자신은 나이가 들어가는데 대중음악의 질은 후퇴하는 것 같아 회의감이 들었어요. 5년, 10년 후에도 내가 이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아니다'라는 답이 나왔죠.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중음악계에서 나왔습니다. 미련도 떨쳤습니다."
10년간의 전공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앞으로의 도전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희망도 있었다. 김 대표의 눈은 대중음악에서 국악으로 옮겨갔다. 지인 소개로 국악단체에 입사해 4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밀려오는 회의감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악도 대중화, 현대화의 포장 속에 국악의 본질인 전통성이 훼손되고 있었다. 퓨전국악이 가요화되고 의상노출도 점점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기반을 다시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2012년, 회사를 나와 창업 준비를 시작한다.
창덕궁의 비원은 김 대표에게 특별한 장소다. 케이앤아츠의 밑그림을 그린 곳이다.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비원을 보면서 '이 곳을 배경으로 국악공연을 하면 얼마나 잘 어울릴까'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음향, 무대 설치도 해야 하고, 관객도 모아야 하는 한계가 있었죠. 그때 드는 생각이 '그렇다면 이 광경을 관객들에게 전해주면 되지 않을까'였습니다. 지금 케이앤아츠의 콘셉트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해외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우리문화를 전하다
케이앤아츠는 우리나라 문화재와 문화유산을 미니 다큐멘터리와 영상, 그리고 국악을 통해 전하고 있다. 주요 타깃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다. '자칫 어렵고 따분할 수 있는 역사를 어떻게 전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보통 국제회의 등 국제 행사에서 10~20분 동안의 초청공연이 정해지는데 그 시간 동안 노래 3~4곡으로 우리 문화를 다 보여줬다고 얘기하긴 어렵죠. 판소리, 사물놀이는 이미 많이 노출됐기 때문에 식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문화를 각 나라의 언어로 미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여준 후에 국악 공연을 해 보자고 방향을 정했죠.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국악밴드 비단이 초청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케이앤아츠
케이앤아츠는 공연 시작에 앞서 2~3분가량 다큐멘터리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에는 국악 가사에 담긴 스토리를 담았다. 물론 해당 국가의 언어로 상영된다. 케이앤아츠는 14편의 다큐멘터리를 8개국의 언어로 제작해 보유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상영 이후 국악공연이 시작된다. '비단'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국악 가사와 관련한 영상이 무대 배경에 깔린다.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라 한국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했습니다. 국제행사에 참여한 외국인들은 해당 국가의 오피니언 리더일 가능성이 크죠. 때문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전하는 효과 또한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케이앤아츠의 공연 횟수도 점차 늘었다. 지난해에는 50여차례 공연을 진행했다.
같은 패턴을 적용해 교육시장에도 진출했다. 다큐멘터리와 국악공연 중간에 역사 강의를 넣어,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도록 한 것이다. 아직은 초청공연이 전체 비중의 80%를 차지하지만 향후 강의를 접목한 콘서트를 절반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1~2년 사이에 강연시장이 확대됐는데 패턴은 다 비슷합니다. 그래서 차별화를 시도했죠. 강연 중간에 관련 공연을 넣은 겁니다. 지루하지 않게 강연을 즐길 수 있어 청중들의 반응도 좋죠. 국악공연을 접목한 강연을 늘려가기 위해 현재 많은 강사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국악인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케이앤아츠의 사업 중심에는 국악밴드 '비단'이 있다. 의미를 들어봤다. "비단은 예로부터 금과 같이 귀중히 여긴 옷감이죠. '우리도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라는 다짐과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가지고 좋은 일을 많이 하자'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았습니다."
비단은 여성 5인조 밴드로, 지난 2013년 9월 결성됐다. 케이앤아츠는 멤버들 전원에게 정규직으로 일자리를 제공한다. 김 대표는 국악을 전공한 이후 제대로 된 직업을 얻지 못하는 국악인들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로 결심했다. "국악의 경우 쓰이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국립국악원이나 국악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직업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모여 팀을 이룬 후에 공연하는 친구들도 많죠. 이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을 주고 싶었어요."
김 대표는 회사 설립과 함께 비단을 꾸리기 시작했고, 오디션을 통해 5명을 최종 선발했다. 구성원들의 자부심도 높다. "우리보다 좋은 음악을 하고, 음악적으로 성숙한 팀도 많습니다. 하지만 콘텐츠에 의미를 담아 활동하는 팀으로는 유일하죠. 때문에 구성원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비단은 지금까지 두 번의 정규앨범을 내놨으며, 오는 24일 3집 앨범을 발표한다.
제2의 비단도 계획 중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주로 수도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서울 다음으로 국제행사가 많은 곳이 제주도"라며 "일단 비단이 잘 정착하는데 주력할 예정이고, 안정화된 이후에는 제주도의 문화유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또 하나의 비단을 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2의 비단 역시 국악의 본질인 전통성을 잃지 않는 밴드로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짐이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