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중국 정부의 보복이 거세다. 양국 간 경제·문화 교류가 줄어드는 수준을 넘어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민들의 반한 정서도 악화일로다. 중국 현지 분위기와 향후 전망을 김병유 한국무역협회 북경지부장으로부터 들어본다. (편집자)
북경의 하늘이 며칠째 연일 파랗다. 미세먼지 공기 농도도 ‘아주 좋음’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북경의 봄 날씨는 원래 그렇다’와 ‘양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 때문’이라는 소리가 동시에 들리지만 금년 초 북경발령이 났을 때 걱정했던 날씨는 확실히 아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이 한국 기업과 한국인을 대하는 사회 공기가 ‘매우 나쁨’으로 점차 변하는 것이 지금은 더 우려스럽다. 아주 일부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택시를 탈 때나 식당을 출입할 때 한 소리씩 들었다는 이야기와 반한 집회가 예정됐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 번씩 주위를 살피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 한국 상품이라는 이유로 매장에서 물건을 내렸다는 소식과 중국 공안들이 불시에 한국기업을 방문 조사한다는 소식에는 호흡이 곤란한 지경이다.
사드 배치가 결정된 지난해 7월 이후 지자체를 비롯한 양국 정부 간 행사와 대형 문화 및 경제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 TV에서 사라지고, 한국으로 가려던 전세기가 스톱되고 심지어 한국행 단체여행 상품이 인터넷에서 내려지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한 압박은 전 방위로 확대되면서 중국에 소재한 롯데마트 매장의 절반 이상이 영업이 중단된 상태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화장품, 식품에 대한 인허가 조건이 과거에 비해 엄격해지면서 제때에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행위가 상당히 조직적이어서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국은 어떤 정책을 발표할 때 법률, 시행령, 지침 등 세부 조항까지 한꺼번에 발표하는 우리와 달리 몇 줄의 목적이 서술된 통지, 최고 책임자의 연설문 형태로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하부 기관의 정책 담당자 혹은 실무자들이 나름대로 해석한 후 그 목표에 가장 부합한 방향으로 먼저 정책을 실행한다. 그 실행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제재를 가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주로 지켜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드에 대해 중국 정부가 일관되게 발표한 키워드는 “사드배치를 반대하며, 이로 인한 모든 책임은 미국과 한국이 져야한다”와 “외자기업은 환영하지만, 외자기업도 중국의 법을 지켜야한다”이다. 사드 보복을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지시는 없다. 일선 기관에서 엄격한 법규의 적용을 구실로 제재의 방향을 자체로 정하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 세관당국이 한국의 비중이 높은 화장품과 식품 등에 대해 엄격하고 까다로운 통관기준을 적용하거나, 현지 한국기업에 대한 소방, 안전, 위생, 환경, 노동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법규위반 사례를 조사하는 것이 그 예이다.
중국의 사드제재 강도가 지금보다 심해질 경우 흐름이 피해의 방향이 약간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업종별로는 한국산 소비재에서 점차 중간재로 선회하고, 방향성은 대중 수출기업들에서 중국 현지진출 기업으로, 기업 규모별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정서적으로는 2월말 롯데의 부지제공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불만 단계가 이미 직접적인 경고 및 압박단계로 변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흐름에서 중국이 중요하게 생각할 키워드는 한국산의 대체 가능성과 중국에 대한 피해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부문은 중국으로 대체 가능성이 높은 소비재를 수출하는 중소기업일 것이다.
소비재는 전체 대중국 수출비중에서 중간재에 비해 극히 낮지만, 영세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분포가 높으므로 수출 규모는 작더라도 체감 피해는 예상보다 클 수 있다. 대중국 수출의 95%가 중국의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원부자재, 중간재, 자본재이더라도 대체 가능성과 중국 생산과정의 피해 정도에 따라 역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국은 사드로 인해 현지 우리기업의 경영 악화가 중국인들의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서서히 임계점에 다다른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실망과 정서적 반감이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에서는 연일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서류 기재사항 미비, 달라진 통관 규정 미숙지 등으로 발생한 사례까지 사드 보복으로 소개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보내는 시각도 있다. 2~3년 전부터 중국은 시장의 선진화, 법치주의 등을 내세우며 사회전반의 걸쳐 법제도를 재정비하고 동시에 규범 적용을 엄격하게 하고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법규들과 정책들이 발표되고 있어 한국기업의 피해가 사드 보복 차원인지 아니면 신 규범을 지키지 않아서 받은 것인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어려운 사드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중국의 사회·경제적 제도의 변화에 모니터링과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과거 관치 시대의 키워드로 중국을 여전히 이해하고 있다면, 법치를 지향하는 중국에서 더 이상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제품의 품질과 브랜드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사드 국면에서도 중국의 법규를 제대로 지키는 제품들과 중국 시장의 변화에 부합하는 제품은 여전히 환영을 받고 있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쯤은 중국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시장으로의 포트폴리오 전략을 새로 짜야할 시점이 온 것도 같다. 수년 전부터 중국시장이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출에 성공한 후 다시 중국에서 크게 환영받는 기업들도 많이 있다는 점도 벤치마크 할 부분이다. 동시에 2010년 노벨평화상 문제로 노르웨이산 연어수입을 제한했을 때 노르웨이가 성공한 제3국 수출확대 및 우회 수출전략도 연구해 볼 만하다.
사드 보복이 어디로 방향을 틀어버릴지 예상이 되지 않는 지금 현지 진출기업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피하고 있다. 현지 경영 상황이 중국의 달라진 법규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면밀하게 체크하면서 자신들에게 화살이 돌아와 자칫 생존의 문제로 연결될지도 모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한국 회사가 아닌 것처럼 꾸미자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되곤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청명하고 따뜻한 북경의 봄 날씨와 같은 따사로움이 우리 기업들에도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고대해 본다.
중국 정부가 사드 배치 보복 조치로 중국인들의 한국 단체 관광 상품을 전면 금지시킨 1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이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