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한미FTA가 헌법상 경제민주화와 조화되도록, 경제민주화를 수용하도록 대폭적으로 개정해야 합니다.”
한미FTA 발효 5년, 통상 전문변호사인 송기호 변호사(54·사법연수원 30기)는 한미FTA는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대폭적인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헌법상 경제민주화를 반영한 한미FTA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말로, 한국 경제의 해묵은 과제인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을 맡을 만큼 통상분야 권위자다. 2011년 한-EU FTA 국회 비준동의안에 번역 오류를 처음 찾아낸 사람도 그다. 당시 비준동의안은 당초 2010년 10월 일찌감치 국회에 제출됐으나, 한글본의 번역 실수가 발견돼 지난 2011년 2월28일 오류를 고친 새 비준안이 국회에 다시 제출됐다. 정부는 한미FTA에 대해 “세계경기 위축 속에서도 양국 교역은 증가세를 지속했다”며 “고용창출과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송 변호사의 진단은 매우 다르다. 송 변호사를 만나 한미FTA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짚어봤다.
처음부터 최전방에서 FTA 독소조항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적으로 봐왔다. 5년이 지난 현재 소회가 어떤가.
한미FTA는 단순히 관세율을 낮추는 경제무역협정이 아니다. 헌법상 경제민주화 조항을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중요한 법·제도의 변경을 가져오는 문제다. 지금 중소기업적합업종에 대해 제대로 된 입법을 못하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미FTA가 경제민주화 조항을 상당 부분 가로막고 있다. 안타깝다. 한미FTA가 우리 사회·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제대로 평가해야할 때가 됐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전인 2011년과 그 이후를 비교하면 한국의 대세계 수출은 연평균 2.3% 준 반면, 대미 수출은 연평균 3.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세계 경제불황 속 윈윈 효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차에 대해 8% 깎아주고, 미국은 한국차에 2.4%를 깎아주니까 당연히 두 나라 사이 자동차 교역은 늘어난다. 다른 제품에 비해 값을 깎아주는 협정이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문제는 평가기준이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미국인 아닌 다른 나라 상대 수출은 줄었는데 미국에 대한 수출은 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추세는 모든 나라가 같다. 그 시기 유럽이나 중국 등 아시아 대부분 경제가 좋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달러를 풀어서 초저금리로 경제가 회복됐다. 미국에 대한 수출 증가를 다른 나라에 대한 수출 감소와 비교하면 안 된다. 미국 시장을 놓고 한국이 수출이 늘었다면 다른 나라는 얼마가 늘었는지 비교해야 한다. 한미FTA로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정부 주장처럼 단순하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평균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수출이 더 는 건 사실이다. 미국은 대세계 수입량이 평균 1.3% 늘었고, 한국은 3.4% 늘었다. 하지만 오로지 FTA효과인지는 알 수 없다. FTA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를 비교해 얼마나 수출이 늘었는지를 정부가 통계를 근거로 제대로 발표한 적은 없다. 미국 무역위원회의 2015년 조사·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미국이) 한미FTA를 통해 한국과 교역에서 적자를 줄였다. 한미FTA를 하지 않았다면 미국 적자가 더 늘었을 것이고, 2015년 158억달러의 무역적자를 줄였다는 보고다. 뒤집어 얘기하면 한국의 경우 158억달러 무역흑자를 늘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FTA 경제적 효과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FTA를 하지 않았을 때와 했을 때를 비교하는 통계가 있어야 한다. 이번 정부의 발표는 일면적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했다. 수출 증가 효과도 지금은 좀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는 불충분하고 부실한 자료다.
일시적으로 교역량 증가 효과는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본다면 한미FTA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10년 동안 일자리 38만개 늘어난다고 했다. 국민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얼마나 늘었는지, 소득이 얼마나 늘었는지의 문제다. 설령 수출이 늘었다고 해도 이익이 시민에게 골고루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일자리를 얼마나 늘렸는지에 대해 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 요컨대 한미FTA의 수출입 효과는 크지 않다. 오히려 경제민주화와 경제 정책 자율성을 제약한다. 한미FTA는 실패했다고 본다.
한미 FTA 효과가 자동차 분야에 국한돼 있다는 비판이 있다.
한미FTA에서 자동차 관세 인하가 발효된 게 작년이다. 2016년 1월1일부터 한국이 미국차에 대해 8% 관세, 미국이 한국차에 대해 2.4% 관세를 낮춘 것이다. 자동차는 작년부터 FTA 효과라는 게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미FTA가 적용되기 시작한 작년부터 한국 자동차 수출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말한 5년 가운데 자동차 수출 증가와 관련해 자동차 FTA가 적용되지 않던 4년 동안의 수출 증가를 마치 FTA 효과라고 말하는 셈이다. 자동차를 끌어다가 FTA효과에 갖다 붙여놨다. 자동차를 빼면 실제 FTA로 인한 수출 증가는 대단히 미미할 것이다. 착시다. 정부는 이런 걸 제대로 국민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한미FTA 때문에 미세먼지를 줄일 수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저탄소 차량 지원 제도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차에 대해서는 200~300만원 더 값을 매기고, 적게 배출하는 저탄소 차에 대해서는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미세먼지 배출의 주된 원인이 자동차 배기가스다. 저탄소 차량 지원 제도를 통해 미세먼지를 줄이고 환경을 개선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제도는 2013년 도입됐다가 시행 시기를 두고 유예를 거듭하고 있다. 대기환경보전법을 개정해서 이 조항을 2013년 넣었는데 미국이 한미FTA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해서 2015년으로 시행을 늦췄다. 또다시 2020년 이후로 연기했다. 아무래도 미국에는 배기량이 큰 대형차가 많으니까 제도가 도입되면 배기량 큰 미국차 값이 올라 한국에서 가격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한미FTA가 단순한 관세율 협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제·조세·환경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도 변경을 가져오는 법적인 장애물이다. 국회 입법을 통해 개정된 법 시행 마저 한미FTA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한미FTA가 헌법 위에 있는 것이다. 한미FTA를 평가하는 기준이 중요하다. 대기업 수출 증가가 평가기준이 될 수 없다. 보통 시민들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가 평가기준이 돼야 한다. 일자리, 좋은 공기 등이다. 한미FTA 통해서 수입되는 차량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에 따라서 달리 관세를 적용하는 식이다. 더 좋은 공기, 더 좋은 시민의 삶을 위한 FTA를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내 경제는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미FTA가 도움이 안 됐나.
한미FTA는 우리 경제의 과제인 양극화 해소, 노동인권의 보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미 우리 경제에서 강자인 수출 대기업에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줬다. 정규직-비정규직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가장 기본적인 협약을 한미FTA는 수용하고 있지 않다. 한미FTA 노동편에는 선언적이고 장식적인 노동권 보호 규정이 있을 뿐이고 실효성 있는 규정이 없다. 경제민주화나 양극화라는 근본적이고 시대적인 과제를 해소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외려 양극화를 방치하고 부추겼다. 한국의 경쟁력 있는 분야와 미국의 경쟁력 있는 분야를 서로 나눠 갖는 게 FTA다. 경쟁력 있는 분야 외에는 더욱 도태되는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한미 FTA의 산물이다. 민주당을 지지해온 제조업이 무너지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다.
한국무역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미 수출업체들은 한·미 FTA 만족도와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분명 장점도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과 무역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관점, 더 넓은 시민의 관점에서 봐야한다. 미국과 무역하는 분들이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뤄야 할 다른 많은 부분들이 있는데 미국과 거래하는 사람들만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FTA를 체결한 나라에 전문직 취업비자를 할당해왔던 미국은 한국에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를 내주지 않고 있다.
트럼프에게 요구해야 할 부분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노력한다는 문서도 보냈다.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유학생을 미국에 보내는 한국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미국으로 유학가서 학위를 가지고 취업을 할 때 유학생 비자로는 안 된다. 당장 영주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취업비자를 받아야 한다. 취업비자 없으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인도 IT 종사자들이 미국에 취업을 많이 했던 것도 취업비자 덕분이었다. 미국이 한국과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취업비자 문제는 한미FTA가 대등하지 않은 협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등하게 이행을 요구하고 서로의 뜻을 대등하게 관철할 수 있는 협정이 처음부터 아니었다. 미국은 FTA를 하는 나라에 기본적으로 취업비자 쿼터(할당량)를 내주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미FTA 발효 5주년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농업이 황폐화할 것이란 우려에도 농축산물은 수출 증가폭이 수입증가폭보다 컸다고 한다.
농업 관세율을 낮추는 방식은 10년, 15년 장기간 걸쳐 낮추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산 소고기에 매기는 40% 관세도 한꺼번에 없애는 게 아니라 15년 동안 매년 2.7%씩 없애는 것이다. 본격적인 충격은 아직 오지 않은 셈이다. 한미FTA로 바로 효과가 나오는 것은 제조품 쪽이다. 농업에 충격이 크다고 본다. 작년에 과일 전반적으로 값이 내렸다. 쌀도 그렇고 거의 모든 작물이 지난해 값이 내렸다. 한미FTA 발효로 아주 고급 품목부터 값싼 농산품까지 수입되면서 농업에 충격을 주고 있다.
유전자조작농산물(GMO) 표시 문제도 한미FTA와 관련이 있는데.
한미FTA는 한국의 표시제도를 크게 제약하고 있다. 한미FTA를 체결할 때 생명공학에 대한 합의가 있는데 표시제도 관련해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한미FTA 이후 유전자조작식품이 아니라는 표시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GMO를 사용했으면 썼다고 표시하고, 쓰지 않았으면 안 썼다고 표시해야 하는데 정반대로 간 것이다. 한국의 농업계와 생활협동조합들은 식품 GMO 완전표시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과의 마찰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유전자조작 표시는 의무인데도, GMO 옥수수사용 식용유는 표시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다. 표시가 안 되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와 비슷하다. 표시가 되지 않으니 소비자는 모른다. 더 나은 환경을 강조하는 흐름과 맞지 않다. 식품이 유전자조작이 아니라는 것은 생산자가 알리고 싶어 하는 내용이다. GMO가 아닌 식품을 아니라고 표시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세계적인 GMO 반대 흐름을 위축시키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5월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새 정부가 한미 FTA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할까.
한미FTA는 헌법상 경제민주화 관계없이 미국 금융자본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개혁 등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입법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FTA는 이를 가로막고 있다. 헌법상 경제민주화 속에 한미FTA가 편입돼야 한다. 한미FTA가 경제민주화와 조화되도록, 경제민주화를 수용하도록 대폭 개정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사진/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