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올바른 직업정신이 경제를 살린다

입력 : 2017-04-05 오전 10:49:58
지난달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판결이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법과 원칙에 위배될 경우 국민의 힘으로 축출된다는 선례를 선명하게 남긴 것이다.
탄핵 재판 과정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강일원 재판관의 냉정하고 치밀한 심문이었다. 역사적 재판의 주심을 맡아 주어진 책무를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써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법관에게 주어진 직업적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이해집단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일원 재판관 같은 법조인 뿐만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그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회계사나 기업분석가(애널리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경우 그 책임이 회피되거나 방기됐다.
 
이를테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할 때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그 문제점을 제대로 짚고 엄정하게 지적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화증권을 제외하고는 책임을 다한 애널리스트는 없었다. 만약 애널리스트들이 문제점을 올바르게 지적했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무리한 합병은 강행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설령 강행되더라도 합병비율이 왜곡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곡된 합병안에 국민연금이 무리하게 찬성하는 사태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꿀먹은 벙어리였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문제는 회계사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경우이다. 대우조선이 억지로 이익을 부풀려서 벌어진 분식회계 문제에 대해 증권선물위원회는 과징금과 임원해임 권고 등의 조치를 내렸다.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1년간 영업정지 처분했다.
 
감독당국에게도 책임은 있다. 기업이 분식회계를 통해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키거나 주가를 억지로 띄우려 할 경우 감독당국이 미리 막거나 사후에라도 추상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감독당국이 그러한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대상 기업이 클수록 그런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기업회계는 믿기 어렵고, 기업의 주가는 언제 어떤 이유로 폭락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불신과 조작이 창궐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 경제는 치르지 않아도 될 대가를 치러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나 세계경제포럼 등에서 우리나라의 회계 투명성이 세계 최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나 국가위상과 비교해보면 낯뜨거운 일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도 있었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삼성이 금융위원회에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방안을 문의했는데, 이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가 보유하던 삼성카드 지분 34.4%를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설 무렵이었다. 삼성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했다는 관측이 나돌 때였다. 그런데 삼성의 문의를 돌려보냄으로써 무모한 전환 시도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삼성의 복안이 보험계약자에 적지 않은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성이 큰 것을 비롯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조인이나 애널리스트나 회계사, 그리고 감독당국자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이들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주어진 책임을 다할 때 기업과 경제는 신뢰를 얻는다. 주가조작 등 불미스런 사태가 방지되고 투자자들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국가신인도가 개선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신뢰성있는 경제지표와 올바른 경제정책이 산출된다. 올바른 직업정신을 발휘하는 것은 건실한 경제발전의 첩경이다.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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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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