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4일 경북 경산의 한 CU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살해됐다. 단돈 20원짜리 비닐봉투값을 두고 벌어진 실랑이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분을 이기지 못한 손님의 칼에 찔렸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현재 유가족이 받은 보상은 편의점 가맹점주(개인)가 가입한 산재보험에 따른 보험금과 점주가 개인적으로 건넨 장례비가 전부다.
사건이 발생한지 3개월을 훌쩍 넘긴 지난 4일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박재구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건 발생 112일만이었다. 박 대표는 "고인의 유가족과 CU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사과문은 볼수록 이상했다. '공식'이라는 이름을 단 사과문은 단지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서만 유감을 표명했다. 사과의 대상에는 엉뚱하게도 'CU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까지 포함됐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도대체 누구에게 무얼 사과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사과문이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한 아르바이트생의 죽음에 대한 책임과 '죄송하다는' 단어조차 빠져있었다는 점이다.
박 대표의 사과에 유족은 또 다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알바노조에 따르면 BGF리테일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 고인의 아버지에게 문자메시지로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고 알렸을 뿐이었다. 아무리 알바가 비정규직이라지만 자신들의 브랜드를 걸고 하는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찾아가서 머리숙여 사죄하는 것이 상식이다.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은 "아버님이 고령이라 인터넷 사용이 어려워 해당 내용을 보지 못하고 있었고 우리가 연락해 내용을 보내드렸다"고 말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BGF리테일의 사과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입장발표를 할 것이 아니라 대책위원회와 유가족과 함께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기 위한 협의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BGF리테일이 발표한 재발방지대책에도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대책에 가장 많이 나온 말 중 하나는 "가맹점주와의 협의를 통해"였다. 매장의 안전 미비사항 개선도, 안전사고 예방 매장 개발 노력도, 휴식과 대피가 용이한 '안심 카운터' 도입도, 사고에 대한 지원방안도 모두 가맹점주와의 협의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결국 가맹사업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과 비용을 가맹점주에게 넘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자연스레 커질 수밖에 없었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가맹비를 받고도 책임은 회피하는 모습은 기업이미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순실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처음부터 빨리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BGF리테일에게 궁극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말기를 바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편의점업계는 경각심을 갖고 아르바이트생의 안전한 근무환경을 보장하도록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선 외진 곳 등 범죄에 우려가 큰 곳부터라도 예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간당 6470원의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안전할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 당해선 안된다. 노동부와 사법부는 안전관리 지침을 하루빨리 만들어 불량한 사업장은 감독, 엄정한 사법처리 등을 통해 강력히 처벌하고, 유사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지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산업2부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