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의중 기자] 대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재계의 위기감이 예사롭지 않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이명박)와 '규제 철폐'(박근혜)로 압축되는 앞선 두 정부와는 달리 '재벌개혁'에 대한 기치가 높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근원이 뿌리 깊은 정경유착이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세론의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재벌을 '적폐', 문 후보와 함께 양강으로 떠오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대한민국 경제를 '동물원'에 비유한다. 경제정책은 진보적, 안보는 보수적으로 평가되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재벌을 '구태'로 바라본다. 노동의 가치를 꺼내든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독식'이 대재벌 키워드다. 심지어 보수 적자를 자처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마저 재벌에 대한 본심은 '착취'다. 홍 후보는 시장경제를 말하지만, 이는 보수표심을 의식한 진영논리로 내면에는 재벌에 대해 비판적이란 게 오래된 측근들의 전언이다.
문재인, 적폐청산 최우선에 ‘재벌’…안철수는 ‘동물원 허물기’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재벌개혁에 대한 방향성은 같다. 지배구조 개혁을 비롯해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의무보유 확대, 재벌 금융사에 대한 통합금융감독, 갑질 횡포에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총수 사면 제한 등 공약도 큰 차이를 보이질 않는다. 다만, 문 후보보다는 안 후보가 유연성이 있다는 평가다.
문 후보는 재벌을 적폐로 규정한다. 적폐 청산은 그의 대선 기조다. 문 후보는 2012년 대선 때부터 “재벌은 중소기업도 모자라 골목상권까지 사냥하고 있다”며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캠프 관계자는 10일 “문 후보가 적폐 청산의 중심에 재벌을 둔 건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셌던 지난 대선 때보다 더 강한 개혁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30대재벌 자산 3분의 2를 차지하는 상위 재벌 규제에 초점을 맞췄다. "10대재벌, 그중에서도 4대재벌 개혁"을 선언했다. 동시에 "이제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폐기할 때"라며 대안으로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등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안 후보는 정치 입문 전부터 기업구조를 삼성동물원·LG동물원·SK동물원에 비유하면서 “이 동물원에 갇히면 죽어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보면 총수 일가가 기업을 사유화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며 재벌개혁의 우선과제로 지배구조 개선을 꼽았다. 이를 위해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 및 독립성 강화를 강조했다. 재벌 규제에 힘을 싣고 ‘기업분할명령’ 등 제재방안도 마련했다. 다만,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건 기업과 민간의 몫이란게 제 확실한 철학"이라며 문 후보와의 차별화에도 힘을 쏟았다.
홍준표 “대기업하면 착취”…유승민도 재벌개혁 앞장
홍 후보는 5당 후보 가운데 표면적으로 가장 기업 친화적이다. 자유시장경제를 명시한 헌법 119조1항을 근거로 "집권하면 기업 기 살리기에 경제정책의 방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밝혔다. 경제민주화 조항인 119조2항은 무시됐으며, 재벌개혁에 대한 공약 또한 전무하다. 다만, 속내는 다르다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귀띔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11년 대기업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묻는 질문에 "착취"라고 말해 논란을 자처하기도 했다. 또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행위에 대해선 “기업 발전 전체를 저해하는 요소로, 반칙과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홍 후보는 그의 저서 '변방'이 말하듯 비주류의 길만을 걸어왔다. 모래시계 검사로 일약 유명세를 탔지만, 검찰 재직 시절 서울대 출신들에 가려 한직을 떠돌았다. 정치 입문도 지역구 공천 문제로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신한국당으로 옮길 정도로 야권 기질이 강하다. 서울대 출신에 공안검사 등 검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안상수와는 당 내에서 대표적인 견원지간이었다. 이런 그의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은 '독고다이'라는 별칭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당 관계자는 이런 그에 대해 "지금은 당 대선후보로 지지층 결집을 위해 보수정책을 취하지만, 집권하면 놀랄만한 개혁정책을 펼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홍 후보와 보수적자 논쟁 중인 유 후보는 재벌을 법과 시장 원칙 위에 군림하고 있는 구태로 본다. 유 후보는 “재벌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면서 “시장이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재벌 대기업들의 구태를 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주요 공약으로는 ▲비정규직 채용 제한 ▲일감몰아주기 원천 차단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발표했다.
심 후보는 재벌개혁의 원조로 그 필요성을 가장 먼저, 가장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이번 대선의 기치인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재벌 독식의 해체는 필수적이라고 바라본다. 그는 출마 일성으로 “노동개혁을 새 정부의 제1 국정과제로 삼겠다”면서 “재벌 3세의 경영 세습을 금지, 재벌 독식경제를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공약으로는 재벌 세습 금지를 비롯해 임금차별 해소 특별법 제정,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등을 마련했다.
대선주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재벌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재계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창립 이래 처음으로 총수(이재용)가 구속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시대가 변했다는 점을 절감하게 됐다"며 "투자와 일자리창출 등 경제 기여도만으로는 더 이상 여론에 대응하기 힘들어졌다. 관행을 버리고 기업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경유착의 고리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존폐 위기로 내몰리는 등 환경도 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재벌을 만악의 근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의중 기자 zer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