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의 고민은 '신(新)소재'에 있다. 소재산업은 진입장벽이 높기로 유명하다. 특히 신소재 개발에 성공할 경우 남들이 쉽게 추격할 수 없어 길게는 수십년 동안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된다. 수년전부터 '꿈의 신소재'로 불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해 성공과 도태의 기로에 있는 소재들을 정리해봤다.
'탄소나노튜브(CNT·Carbon Nanotube)'는 철강보다 100배 강하고, 구리와 전기 전도율이 비슷하며, 열 전도율은 자연계에서 가장 뛰어난 다이아몬드와 같아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뛰어난 물성 덕분에 반도체에서 2차전지, 자동차, 항공기 동체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지난 1991년 일본 NEC연구소의 이지마 박사가 처음 발견한 뒤 관련기업들의 기대도 커졌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도 CNT의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한화케미칼(009830)은 2008년 일진나노텍을 인수하며 CNT 대량생산 기술을 확보했고, 2011년에는 미국 탄소나노소재 전문 연구기업 XG사이언스 지분을 인수하며 국내 선두주자로 나섰다. 사업 초기 회사 내부에서는 2015년 매출을 2500억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한화케미칼은 사업을 본격 시작한 지 8년여 만인 지난해 철수했다. 일부 연구개발(R&D) 인력만 남기고 총 연산 50톤 규모의 울산 2공장은 현재 완전히 폐쇄된 상태다.
시장의 개화 속도가 기대보다 느려 수익성 악화를 더는 버티지 못한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CNT는 워낙 고가라 첨가제 형식으로 제품에 들어가는데, 거래처들은 굳이 그 정도의 고품질까지는 필요 없다는 분위기"라며 "특히 지난 2012년 화학사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잘 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케미칼과 대조적으로
LG화학(051910)은 올 초 CNT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LG화학은 올 1월 단일 라인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 400톤 규모의 생산공장을 만들고, 본격 양산을 시작했다. 생산라인에는 총 250억원이 투입됐다.
이는 시장에서 중국 SUSN씨노텍(600톤), 미국 C-나노·일본 쇼와덴코(500톤)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CNT는 최근 리튬이온전지에도 사용되고 있는데, LG화학은 전지용 소재 판매를 시작으로 규모를 점차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올해 목표 생산량은 100톤, 목표 매출액은 100억원이다.
LG화학 측은 "시장규모가 아직 크지 않지만 물량을 늘리고 고객을 확보 중"이라며 "내년까지 공장을 풀가동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특히 "2011년 독자기술 개발을 시작해 약 250건의 특허를 따냈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에서 차별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시장 상황에 따라 오는 2019년 증설도 검토할 계획이다.
금호석유(011780)화학도 지난 2009년 CNT 제조공정 기술을 개발한 뒤, 2013년 충남 아산에 생산공장을 준공하고 산업생산을 시작했다. 총 50톤 규모 공장의 가동률이 최근 상승하면서 올해 안에 증설 여부를 검토 중이다.
코오롱인더(120110)스트리는 지난 2013년까지 연구개발을 이어왔지만 이후 상업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기초소재로 많은 현금을 벌고 있어 시장이 열릴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며 "CNT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소재는 실패하지 않으려면 반발짝 정도만 앞서 나가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남겼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용처 확보가 어려운 시장이라 회사들이 몸집을 못 불리는 상황"이라며 "LG화학도 자가 소비가 많아 증설한 것이지, 새 고객은 많지 않은 걸로 안다"고 평가했다.
아직까지는 공개된 시장 전망치도 많지 않은 편이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는 세계 CNT 시장의 규모가 지난해 824톤에서 오는 2020년 1335톤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