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 대전에 사는 김모(24·여)씨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김씨에게 영상에 나온 여자가 김씨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보라며 웹사이트 주소 하나를 전송했다. 영상 속의 여성은 김씨가 맞았다. 전 남자친구가 자취방에서 성관계를 할 때 몰래 촬영한 것이다. 전 남자친구가 핸드폰을 분실하면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지만 영상은 이미 온라인상에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몰래카메라(몰카) 및 인터넷 유출 등 이른바 ‘디지털 성폭력’으로 정신적 고통을 넘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피해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할 경우 일부 피해자들은 이혼을 당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13일 경찰청에 따르면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범죄 신고율은 지난 2010년 1134건에서 2015년 7615건으로 7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접수된 몰카, 음란물 등 성풍속에 관한 죄는 총 1만5679건으로 이 중 카메라이용촬영 발생 건수는 7615건(48%)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해 4월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인 ‘소라넷’이 폐쇄됐지만 앞서 소개된 사례 같은 피해자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소라넷 폐쇄 청원운동을 이끈 하예나 DSO(Digital Sexual Crime Out·디지털 성폭력 아웃) 대표는 “소라넷 폐쇄 이후 이전에 비해 몰카 등 카메라 이용촬영을 통한 디지털 성폭력 줄어들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순 없다”면서도 “여전히 ‘유포 동영상’ 혹은 ‘몰카’ 게시물 등의 문제는 크게 변동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처벌규정의 미비다. 현행 성폭력처벌법과 정보통신망법에 관련 규정 및 처벌조항이 마련돼 있어도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디지털성폭력을 전부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사법적 해결을 구하더라도 속옷과 얼굴은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신체 부위’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성범죄로 기소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울림’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카메라이용촬영 범죄 검거율은 97.6%에 이르지만 기소율은 해마다 낮아져 지난 2013년 53.6%, 2014년 43.7%, 2015년 31.2%로 3년간 평균 기소율(42.8%)은 지난 2010년 기소율(72.6%)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이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본인이 자신의 민감한 신체부위나 사생활을 촬영하더라도 제3자가 이를 동의 없이 유포하면 성범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일명 리벤지포르노 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법률안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 어렵다 보니 일부 피해자들은 전문 동영상 삭제 업체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의뢰비만 한 달에 300여만원으로 비싼 편에 속하지만 수요는 끊이지 않는다. 온라인 정보 삭제 대행업체인 산타크루즈컴퍼니 김호진 대표는 “요즘에는 ‘리벤지포르노’ 형식의 삭제의뢰가 많다. 그 중 일부는 법적인 처벌이 두려워 최초 유포자가 의뢰하기도 한다”며 “이런 온라인 삭제의뢰 건수는 한 달에 20~30건 정도로 의뢰자 연령대는 2030대뿐만 아니라 4050대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기록을 100%로 지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김 대표는 “어느 정도 지우기까지 평균 6개월 정도 걸린다”면서 “우선적으로 국내·외 사이트를 차단하거나 관련 기록을 삭제하지만, 해외 사이트의 경우 우회해서 찾아보는 것까지 막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몰카 촬영이나 무단 유포 등의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디지털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면서도 “이것이 장난이나 놀이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임을 사회적으로 상기시켜서 가해자들이 그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예나 대표 역시 “잠재적 가해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다”며 “가해하는 사람이 없으면 피해자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한 매장 앞에 ‘몰래카메라’·‘몰카’ 등의 광고가 눈에 띈다. 사진/조용훈 기자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