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박근혜 정부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연설을 한 예술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뒤 정부지원을 끊었다는 법정 진술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심리로 26일 오후 열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7회공판에서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예술위) 소속 책임심의위원으로 일했던 문학평론가 하모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등에 따르면, 문체부 예산 10억이 배정된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사업은 시·수필·희곡·동화 등 분야에서 100명의 예술인에게 1000만원씩 지원한다. 하씨는 2014년 3월부터 1년 임기로 책임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3심제로 운영되는데 2심까지 100명을 조금 넘는 인원으로 추려지고 3심에서 최종 100명이 선정되는 방식이다.
하씨 등 5명의 책임심의위원들은 그해 2심까지 102명의 아르코 사업 대상자를 뽑았다. 3심을 끝으로 심의 절차가 마무리돼야 했지만 문체부 산하 예술위 직원들이 하씨를 찾아와 절차를 중단해야한다고 알렸다. 하씨 증언을 종합하면 2015년 5월쯤 예술위 직원 2명이 그의 사무실로 찾아왔고, “102명 중 18명이 검열에 걸렸다. 문체부 지시가 강력하다. 청와대가 있는 것 같다”며 “도저히 막을 수 없다. 아르코 사업을 무산시키려고 하니 18명을 제외하고 도장을 찍어줄 수 있겠느냐”고 하씨에게 말했다.
하씨는 법정에서 “18명이 누구냐고 물어봤다가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되는 거 같아 (명단을) 보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러다가 1명만 알려달라고 했다. 이윤택 감독이라고 했다”라고 증언했다. 하씨에 따르면 예술위 직원들은 “전통적인 좌파 예술인들은 아닌 거 같다. 우리들도 이유를 잘 모르는데 이씨는 문재인 지지 연설을 한 거 같다. 우리도 기준이 헷갈린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사업에서 당시 희곡 분야 1순위 선정자였다.
증언을 하다 감정이 북받친 하씨는 “책임심의위원은 영광스러운 자리다. 문학 외적인 기준으로 배제하는 것은 과거에 없었다”며 “이거 누가 이렇게 장난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권이 바뀌면 분명히 감옥 갈 것이라고 얘기했었다”라고 증언했다. 결국 5명의 책임심의위원들은 도장을 찍지 않은 채 3차 심사를 거부했고 임기가 끝났다. 이후 하씨는 예술위 직원에게서 이사회를 통해 100명이 아닌 70명이 지원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책임심의위원 제도는 결국 폐지됐다. 하씨는 “말을 안 들으니까 폐지된 것”이라며 “이런 불행한 일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 측은 하씨가 사용한 ‘검열’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이상원 변호사는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하라고 지원금을 주느냐 마느냐 결정하고,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지원하지 않는 것도 검열인가”라고 묻자, 하씨는 “네”라고 답했다. 하씨는 “모든 절차를 거쳐 주기로 한 거다. 100명을 뽑아놨는데 문학 외적인 이유로 안 준다면 검열”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의 또 다른 변호인인 김경종 변호사는 “경제적 지원 여부는 검열이랑 다르다. 우리는 법적 관점이지만 증인은 광의의 의미로 쓰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오전 증언대에 선 예술위 부장 홍모씨는 “예술위가 불랙리스트에 부역하는 업무를 해 예술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공정하게 지원해야 할 조직의 일원으로서 연루가 돼 있어 창피하고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7회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