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구조개혁 없는 경제 활성화 어렵다”

세계 경기 회복 불구 한국은 경기 침체에 일자리 절벽…장기적 경제 계획 짜야

입력 : 2017-05-17 오전 6:00:00
세계 경제가 회복기미를 보이며 주요 선진국들의 고용상황도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유독 한국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실업률만 봐도 한국은 4.2%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은 4.4%로 근 10년 내 최저치이며, 독일은 5.8%로 1991년 이래 최저다. 이웃나라 일본역시 3월 실업률 2.8%로 1994년 5월 이후 최저수준이다. 대한민국 경제,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의 설명과 해법을 들어본다.(편집자)
 
주요 선진국들 경제의 훈풍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냉기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구조개혁으로 경제체질을 강화한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가계부채 문제가 가계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고, 기업의 투자 부진으로 경제가 활력을 상실한 상태에 빠져 있다. 여기에 구조개혁도 부진해 새로운 성장 궤도로 진입할 수 있는 모멘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결코 주요 선진국들이 공무원 채용을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고, 우리나라의 공무원 채용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한마디로 그간 역동성을 자랑해 왔던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중심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더 주의해야 할 것은 한국 경제의 대전환이 없는 한, 앞으로 우리 경제가 세계 경제의 중심흐름으로부터 유리되는 양상이 앞으로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구조개혁과는 다른 차원의 개혁(?)에 대한 우려
 
그렇다면 새 정부 경제정책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인가는 분명해 진다. 그것은 저성장과 고령화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경제를 새로운 성장궤도에 올리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선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 이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더구나 지난 보수정권이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 대응 준비에 썼어야 했을 골든타임을 9년이나 낭비한 결과, 새 정부는 시간적으로 더욱 급하게 쫒기게 됐고,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 성공은 더더욱 절박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기간 중 제시한 경제정책 핵심은 ‘일자리와 소득 증대에 있어 정부의 역할강화’다. 벌써 금년 중 공무원 1만2000명을 추가 채용할 것이며, 재원 마련을 위해 추경 편성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취임직후 일자리위원회를 만들 것을 지시한데 이어, 12일 “임기 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
 
그렇다면 새 정부에서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발표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을 어떻게 다룰 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대선 공약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는 시장 경제활동의 과정을 존중하고 중시하는 과거 보수정권들과는 달리 시장경제활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부가 직접 고용·소득 등 정책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거시경제모형으로 이야기하자면 보수정권은 고용과 소득을 내생변수로 다룬 반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정책에서는 고용과 소득을 정책변수로 다루겠다는 것과 같다. 내생변수는 모델의 움직임에 의해 그 값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임의로 값을 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정책변수는 정부가 임의로 값을 정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양극화가 구조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경제상황에서 소득주도정책은 강한 설득력과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득정책을 주도해 국민경제의 적정소득수준을 달성하거나 정부주도로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장경제체제에서는 가능하지도 않으며, 이러한 정부주도 정책으로 어떤 비용을 치룰 것인가는 또 다른 과제다.
 
정부가 직접 나서면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느냐'의 여부와 그것을 위해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가'이다. 예를 들자면 공공부문의 고용 확대는 단기적으로 고용 확대 효과가 확실하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공공부문의 고용을 확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도 당연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 주도에 의한 급진적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좋은 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민간부문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압력을 높이고, 이에 따른 기업의 비용 증대 우려 등으로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아지고 일자리 창출마저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또 다른 우려로는 새 정부가 선택적 정책 추진으로 단기적으로 성과를 거두기 쉬운 목표에 국정 역량을 쏟음으로써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이고 본질적이며 장기적인 과제들이 소홀히 다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당장은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큰 성과로 평가받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정부주도정책들의 작용과 부작용이 거의 드러날 3년 후에도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임 박근혜 정부는 집권 4년 중 2014년을 제외하고 매년 추경을 편성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마련에 노력했지만 그 성과는 미약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만들기 성과가 오늘의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일자리 마련 정책보다 중요
 
여하간 새 정부는 운이 좋다. 세계 경제 흐름이 작년 하반기부터 호전돼 최소한 2년간은 상승 흐름을 탈 것으로 전망되는 여건에서 국정을 맡았기 때문에 출발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따라서 초반 2년의 시간을 잘 써야 한다. 초반 2년이 중요한 이유는 구조개혁을 추진하는데 가장 적합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에 대한 OECD 의 연구 결과 ‘The Political Economy of Reform, 2009’에 따르면, 구조개혁 과제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선거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얻은 힘으로 집권 후 2년 안에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구조개혁 정책이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은 국민들과, 특히 개별 이익집단들에게 이미 너무 많은 약속을 했다. 그럼에도 경제체질에 필수적인 구조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구조개혁 중에서도 노동개혁이 핵심이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없이는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들은 반대해 왔으며, 민주당은 이 반대를 존중하겠다는 협약을 한국노총과 체결한 바 있다.
 
마취하지 않은 채 수술을 한다면, 고통을 견디기 어렵듯이 경제활성화 없이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어렵다. 또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경제활성화는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은 성장잠재력을 높이는데 필수적인 동시에 보완적인 과제다. 그러나 경제활성화에 있어 정부 역할은 제한적이며,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가계가 소비를 증대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
 
재벌 개혁과 법인세 인상을 공약하고 노조 지원을 약속한 새 정부가 과연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할 수 있을까.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법인세를 인상하고, 노조의 목소리가 커지는 열악한 사업 환경 하에서는 기업의 사업 의욕이 제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계소비는 가계부채와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증대방안이 나오기 어렵다.
 
구조개혁은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범세계적 과제
 
그렇다면 새 정부는 어떻게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가. 새 정부의 경제개혁 정책이 보수정권의 구조개혁과 다른 정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일지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구조개혁은 이념이나 선진국이나 신흥국의 구분이 없는 공통적인 세계 경제의 과제다. 경제활성화 없이는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한편, 구조개혁 없이 경제활성화가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경제활성화가 일차적인 관건이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가계소비 증대를 촉진하는 것은 어렵지만, 기업들의 사업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새 정부가 기업 활동을 촉진하다는 신뢰를 얻는다면 기업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 기업 투자가 촉진되면 일자리 마련이 시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기업의 신뢰를 얻으라는 것이 정경유착이나 기업의 지난 과오를 묵인해 주자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기업 활동이 보장되고 촉진된다는 신뢰를 얻으라는 것이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경제 살리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정권을 잡은 영국 캐머런 수상의 보수당 정권을 들 수 있으며, 구조개혁을 통해 성공한 사례는 독일의 슈뢰더수상의 2003년 ‘Agenda 2010’을 들 수 있다. 슈뢰더 수상의 개혁안은 메르켈 수상에게 승계돼 당시 ‘유럽의 병자’로 지칭되던 독일 경제를 ‘유럽의 패자’로 일으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에 공히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며, 우리나라의 지난 보수정권 9년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나쁜 일자리 함정을 탈출할 정책 필요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좋은 일자리 부족과 나쁜 일자리 함정’에 빠져 있다. 소위 ‘좋은 일자리(300인 이상 고용업체)의 고용비중은 2010년 16.4%에서 2016년 15%로 낮아졌다. 대기업들의 투자는 부진하고 구조조정으로 고용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종사자 4인 이하 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율은 28%에 달하고, 10인 이하 업체에 41%, 50인 이하 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중은 65.8%에 달한다.
 
특히 신생기업의 89%가 1인 기업이며, 신생기업의 98.8%가 10인 이하 영세기업들이다. 반면에 소멸기업의 94%가 1인 업체이며, 10인 이하 업체가 99%를 차지하고 있다. 즉 자영업내지는 10인 이하의 영세기업에 고용의 대량 유입과 유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대기업의 투자가 부진해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것이 어려운 결과로, 자영업을 통한 자기고용이 증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이 선행하지 않는 한, 일자리 만들기는 지속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질적 개선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과연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기업과 가계의 경제활동 촉진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를 추진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에 한국 경제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보수 정권 9년의 못다 한 숙제까지 모두 문재인 정부에게 넘어 온 만큼 그 역사적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이 한국 경제가 저성장·고령화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정부라는 역사적 소명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새 정부는 저성장·고령화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의 큰 틀을 다시 짜고 국민과 시장을 이끌어 가는 지도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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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