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유통 재벌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과 골목상권과의 충돌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복합쇼핑몰 규제와 더불어 적합업종 지정 법제화까지 공약한 바 있어 업계는 극도로 몸을 낮추며 긴장하는 모습이다.
과거 친기업을 표방했던 역대정부마저 유통재벌을 겨냥한 규제 정책에 나서면서 양측의 갈등이 잠잠해지는 듯 했지만 여전히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명박 정부는 '골목상권' 이슈가 불거지자 집중적으로 대형 할인점 영업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등 규제를 속속 도입하며 규제의 서막을 알린 바 있다. 박근혜 정부도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내걸며 대형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입 규제를 위해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 자정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영업제한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에 월 2회 의무휴업 ▲쇼핑센터·복합쇼핑몰 내 대형마트도 규제 적용 등의 규제를 단행했지만 재래시장 등의 소상공인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골목상권 보호'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출범하며 양측의 갈등이 중요한 경제·사회적 이슈로 다시 부상할 조짐이다.
골목상권과의 최초 갈등은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촉발됐다. 1993년
이마트(139480)를 시작으로 대형마트는 쾌적한 쇼핑환경과 가격경쟁력 등을 앞세워 급속도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당시에는 '유통산업 선진화'라는 목표 아래 정부의 정책적 지원까지 뒤따랐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잠식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고 중소상인들과의 갈등이 본격화했다. 대형마트에 이어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등장은 골목상권 침투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중소상인들의 반발은 격해졌고, 이때부터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쪽으로 정책 방향도 선회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대형 유통업체의 출점을 제한하는 법적 기준을 마련했다. 2012년과 2013년에도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가 추가됐고, 이로 인해 대형마트들은 격주 일요일 의무휴업, 전통시장 인근 출점 제한, 신규 출점시 인근 중소상인과 상생 협의 의무화 등의 규제 대상이 됐다.
이같은 규제로 대형마트 업계는 지난해 매출규모 40조 원을 넘어섰지만, 성장세가 급격히 꺾여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외형은 꾸준히 커지고 있지만 내실은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 온라인쇼핑 등 쇼핑 채널 다양화로 '골목상권 보호'라는 규제의 본래 목표도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실효성을 높이는 정책을 통해 재래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미 동반성장위원회는 매년 특정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이들 품목에 대해 3년간 대기업의 사업 확장과 진입 자제를 '권고' 형식으로 압박해왔지만, 적합업종 지정을 법제화해 압박의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통 업계의 '복합쇼핑몰' 확장 경쟁이 골목상권과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대형 쇼핑시설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체들은 각종 편의시설을 더한 대형 복합쇼핑몰을 지어 성장의 활로를 찾으려 하고 있지만, 지역 상인들은 골목상권 잠식을 우려하며 겨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인근 복함쇼핑몰 건립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다. 2013년 4월 서울시는 상암동 부지 2만644㎡를 판매·상업시설 용도로 롯데쇼핑에 1972억 원에 매각했지만 4년 넘게 쇼핑몰 건립 허가가 보류 중이다. 롯데 복합쇼핑몰 건립 계획이 알려지자 인근 시장 상인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롯데는 올해 안에 상암동 부지에 백화점과 영화관, 업무시설, 대형마트, SSM 등이 결합한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아직 공사도 시작하지 못했다. 롯데쇼핑은 최근 서울시를 상대로 '서울시 도시계획 심의 미이행에 따른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분쟁까지 비화됐다.
롯데는 전주에서도 복합쇼핑몰 건설을 둘러싼 갈등에 휘말렸다.
전주시는 종합경기장 자리에 쇼핑몰·영화관 등을 갖춘 컨벤션센터와 호텔 등을 짓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2012년 롯데쇼핑을 민간사업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지역상권 붕괴 우려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현 시장이 전임 시장 때 계획한 방안을 전면 유보해 갈등이 촉발된 상황이다.
신세계(004170)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부천 신세계백화점 건립을 둘러싸고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부천시는 지난해 10월 상동 영상문화단지에 백화점과 대형할인매장을 포함한 신세계복합쇼핑몰을 짓는 내용의 협약을 신세계컨소시엄 측과 맺었다. 그러나 인근 상인들이 반발로 신세계 측은 단지 규모를 절반가량 줄이고, 창고형 할인매장을 빼고 백화점과 식당가만 짓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절충안도 소용 없었다. 이후에도 상인들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난 15일 신세계측은 부지매매계약 무기한 연기를 신청하는 파국으로 치닫은 상태다.
광주에서도 신세계의 복합시설물 건축이 논란이 되고 있다. 광주신세계는 지난 2015년 5월 광주시와 광천동 일대 34만여㎡에 특급호텔을 신축하고 기존 백화점·마트 등을 새롭게 증개축하기로 투자협약(MOU)을 맺었지만 주변 상인 반발 등으로 사업규모를 40%가량 준 21만3천여㎡로 수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권 등의 반발 속에 광주시의 인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새 정부의 유통산업 규제법안이 '대형 복합쇼핑몰'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아지며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신세계 스타필드 하남을 비롯해 롯데몰 은평, 현대 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 등 복합쇼핑몰 격전이 시작된 가운데 의무휴업 대상 포함, 입지 제한 등의 규제가 신설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무차별 상권 확장을 억제하는 규제의 취지가 실현되려면 골목상권의 보호가 아닌 성장을 유도할만한 구체적 지원 정책도 병행되야 한다"며 "대형 유통시설 입점이 예고된 지역별로 이슈도 상이한만큼 규제 일변도 정책만 지향할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여론수렴은 물론 지자체와 기업간 면밀한 협의가 이뤄지도록 중재자 역할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