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미국의 브로드컴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도시바 메모리사업부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사실상 선정되며 9부 능선을 넘었다. 한국의 SK하이닉스는 미국 우위로 짜여진 초반 판세를 제대로 흔들지 못했고, 실탄 부족 등의 한계도 드러냈다는 평가다.
7일 일본 아사히·마이니치 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도시바는 브로드컴에 우선협상권을 주기로 내부 방침을 정하고, 이달부터 추가 협의에 착수했다. 브로드컴은 미국 투자 펀드 실버레이크와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했으며, 인수 금액으로 2조2000억엔(약 22조27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용 반도체 업체인 브로드컴은 각국 독점금지법 심사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데다, 지속적인 투자 의지도 강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앞서 브로드컴과 2파전을 벌이면서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일본 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INCJ) 간 미·일 연합은 인수 조건 제시를 미루면서 브로드컴에 승기를 내줬다. 미·일 연합은 도시바가 요구한 2조엔 이상의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난관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산업혁신기구의 취지에 맞는 안건이라면 제도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언급, 미·일 연합에 대한 지원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으나 머니게임에서 결국 밀렸다.
막판 변수도 있다. 도시바와 오랜 협력관계에 있던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은 도시바 메모리사업부 입찰에 대한 독점교섭권을 요구하며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했다. 도시바가 브로드컴에 우선협상권을 제시하려면 WD와의 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WD가 미·일 연합에 가세, 판을 원점으로 되돌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WD의 스티브 밀리건 최고경영자(CEO)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을 방문해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과 의견을 조율할 예정이다.
한편 다크호스로 꼽혔던 SK하이닉스와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로 꾸려진 컨소시엄은 인수 가능성에서 한 발 멀어졌다. 최태원 회장이 강한 의지를 보이며 인수전에 나섰지만 자금력 한계를 노출한 데다, 미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호적 입장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애플·아마존과 손잡고 3조엔(약 30조3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써낸 대만 훙하이정밀공업도 기술 유출을 경계하는 일본 여론에 밀려나는 분위기다. 일본 언론들은 WD 행보 등 향후 변수들을 고려해 "도시바 반도체 매각을 둘러싼 정세가 매우 유동적"이라고 전망했다.
7일 일본 아사히·마이니치 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도시바메모리는 브로드컴에 우선협상권을 주는 방향으로 조정에 들어가며 이달부터 추가 협의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