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1. 캐릭터 디자이너 A씨는 캐릭터 개발 사업을 하는 B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B사는 A씨가 개인적으로 창작한 캐릭터에 대해 저작권을 이전받아 사업에 활용했으나 A씨에게 저작권 계약금과 4000여만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A씨를 해고했다. 현재까지 A씨에게 저작권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2. 일러스트 작가 C씨는 D사와 교과서 삽화계약을 체결해 작업을 진행하던 중 삽화 1컷당 최대 20회 이상(완성단계에서 10여회)의 수정 요구를 받아 수정했지만 수정한 부분 대가를 지급받지 못 했다.
일명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 복지법’이 마련됐지만 연 소득 1255만원(문화체육관광부 2015년 조사)이 보여주듯 열악한 창작여건에다 불공정 관행까지 더해져 많은 예술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인 3명 가운데 1명은 욕설 등 인권침해도 경험했다.
서울시는 지자체 처음으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예술인 834명(만화·웹툰 작가 315명, 일러스트 작가 519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불공정 계약조건 강요, 부당한 수익배분, 일방적인 계약해지 등 불공정 관행이 확인되면서 문화예술계의 불공정 관행 근절을 위한 관련 법령·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불공정 계약조건을 강요당한 경우가 만화·웹툰과 일러스트 모두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일러스트는 불공정한 계약조건 강요 경험비율이 79.0%(만화·웹툰 36.5%)로 높았다.
만화·웹툰 분야는 일정금액만 받고 2차 콘텐츠 창작과 사용 권리를 모두 넘겨야 하는 매절계약, 부당한 자동갱신 조항 등 불공정한 계약조건을 강요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응답비율은 전체의 36.5%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2차 저작물 매절계약’(31.4%)과 ‘부당한 수익배분’(31.4%)의 경험비율이 가장 높았고, 기타(12.4%), 자동연장 조항(11.4%), 해외판권 포괄양도(6.7%), 저작권 침해(6.7%) 순이었다.
일러스트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불공정한 계약조건을 강요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한 응답비율은 전체의 79.0%로 업계에 불공정 거래관행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과도한 수정요구’(23.6%)가 가장 높았다. 시안비 미지급(20.2%), 매절계약 강요(15.2%),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해지권(12.6%) 순이었다.
부당한 수익배분과 관련해서는 만화·웹툰 분야에서 경험비율이 비교적 낮고(33.0%) 피해금액이 766만원으로 컸다. 반면, 일러스트 분야는 경험비율이 높고(78.2%) 피해금액이 340만원으로 비교적 작았다.
불공정한 관행과 처우는 인권침해로도 나타났다. 욕설·인권무시, 성추행·성희롱 등 인권침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만화·웹툰 30.8%, 일러스트 36.0%로 3명 중 1명은 인권침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는 실태조사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별도로 계약서에 대한 법률 검토를 했다. 공통적으로 저작물의 2차 사용권과 관련된 불공정조항,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의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출판권을 출판사에 전부 위임하는 내용은 물론 저작자 일신에 속하는 저작인격권까지 침해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일러스트는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과도한 수정·보완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이 문제가 됐다. 이 조항으로 사업자는 임의로 작가에게 수정·보완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작업물 수령이나 대금지급을 거절을 할 수 있으므로 불공정한 조항에 해당될 수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시는 국회 협조를 얻어 기존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시가 추진 중인 개정안에는 문화예술용역거래에서 불공정행위에 대한 신고·조사절차 구체화, 위법행위 처벌규정 강화, 예술인들의 단체구성권·거래조건 협의요청권 보장 등을 담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9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찾아가는 컨설팅에서 예술인들이 저작권과 계약에 관한 법률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