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공공부문 여성임원 비중을 30%로 확대해야 한다는 정책이 나올 만큼 여성이 리더로 성장하기 쉽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여성임원 비중 50%를 달성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이 있다. 더구나 보수적인 식품업계에서 이른바 '유리천장'을 없앤 유일한 사례여서 더 눈길을 끈다. 1980년 농심과 켈로그의 합작으로 세워진 국내 스낵시장의 주축 '농심켈로그'의 얘기다.
농심켈로그는 PDP(Performance & Development Plan) 평가시스템을 기본으로 업무 성과와 경력 개발 계획을 적극 지원하고, 성별에 상관없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해온 결과 남녀 임원 비율이 50대 50으로 높아졌다고 18일 밝혔다.
농심켈로그가 사실상 외국계 회사라는 점도 이같은 조직문화 실현을 가능케 했다. 아직은 농심과 켈로그의 합작법인이지만 현재 90%의 지분은 켈로그 본사에서 갖고 있다.
현재 농심켈로그에는 한종갑 대표이사를 포함해 모두 8명의 임원이 있는데 그중 4명이 여성(인사·재무·마케팅·홍보)이다.
농심켈로그에서 2009년부터 근무 중인 천미연 인사상무는 농심켈로그의 첫 여성임원이다.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고 창의성을 부여하며 직원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인사부의 리더로, 여성 특유의 온화한 성향에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무부서는 김경은 상무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재무부서는 남성이 총괄하는 것과 대비된다. 회사의 핵심 가치를 창출하고 브랜드 포지셔닝을 주도하는 마케팅 부서의 장도 최미로 상무로 여성이고,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및 CSR(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하는 홍보 수장도 송혜경 이사로 여성임원이 맡고 있다.
농심켈로그는 이 밖에 서울 사무실 내 근무자 40%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양성이 평등한 차별없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온가족을 위한 건강한 시리얼 제품을 선보이는 기업답게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다양한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비롯해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차 출퇴근제 등이 대표적이다. 매주 금요일에는 5시에 퇴근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5년 12월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한종갑 농심켈로그 사장은 "켈로그는 채용부터 승진까지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인재 발굴과 지도자 개발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라고 비전을 밝혔다.
켈로그는 전 세계 시리얼 시장을 이끌어 가는 선두기업이자 전 세계 두 번째로 큰 스낵 제조업체다. 미국 미시건 주 배틀크리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국내 농심켈로그는 1980년 3월 켈로그와 농심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1983년 9월 안성 공장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콘푸레이크를 생산했으며 설립 초기 이후 매년 꾸준히 성장하며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글로벌 컨설팅·금융 자문업체 딜로이트 LLP가 최근 64개국 7000여개 기업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아시아 기업의 이사급 이상 임원 중 여성 비율이 7.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아시아 11개국(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 태국, 싱가포르, 일본, 홍콩)에서 여성 임원 증가율이 가장 낮은 곳이 우리나라였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여성 임원 증가율이 4%를 훌쩍 넘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1%도 안된다.
업계 관계자는 "농심켈로그가 외국자본이 합쳐진 회사라고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만큼 남성 중심의 보수적 문화에 편승할 수 있지만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모습"이라며 "다른 기업들도 의사결정구조 등에 여성 목소리가 더 반영되는 인적 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심켈로그 여성임원 4명. (왼쪽부터) 송혜경 홍보팀 이사, 최미로 마케팅팀 상무, 천미연 인사팀 상무, 김경은 파이낸스팀 상무. 사진/농심켈로그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