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달동네 양지마을…이웃간 정으로 더위 난다

에어컨 있는 집에 삼삼오오 모여 더위 피해…영세민 많지만 감자·수박 등 먹거리도 나눠

입력 : 2017-06-22 오후 4:52:52
[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경로당에) 감자도, 수박도 가져와. 서로 날마다 먹을 거를 사와. 다들 형편이 괜찮지 않은데 서로 돕고 살고 있어.”
 
폭염과 혹한에 취약한 에너지 빈곤층은 서울에서 노원구가 가장 많다. 약 1만가구다. 이 가운데 노원 상계동에 있는 양지마을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 빈곤 가구가 모여 사는 달동네다. 이 동네는 웅장한 불암산 자락을 마주하고 있지만 그 모습은 초라하다. 무허가 판자촌이 많은 만큼 집은 낡았고, 65세 이상 혼자 사는 어르신도 많다. 7~8월을 앞두고 불볕더위가 시작된 6월 중순, 양지마을 주민들은 폭염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이들은 이웃 간 ‘더위 품앗이’로 더위를 버티고 있었다. 전기세가 아까워 선풍기 1대도 제대로 틀지 못할 때가 많지만 슬픔을 나누듯, 이웃들과 함께 견뎌내고 있었다.
 
지난 21일 오전 구에서 지원하는 쌀을 기다리고 있던 최병옥(76·남)씨를 만났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이지만 다행히 집에 에어컨이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한국전력에서 전기료 인하 혜택을 받고 있다. 그의 집은 무더위를 피하는 ‘마을 앵커’ 구실을 하고 있다. '마을 앵커'는 종합지원센터 핵심시설이라는 의미다. 최씨는 “(에어컨이 있으니까) 더울 때 3~4명 어르신들이 더위 피하러 온다”며 “돈은 없어도 육신으로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수급자·차상위계층) 어르신들을 대신해 쌀을 받아주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어르신들이 최씨 집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22일 오전 양지마을 골목 한 편의 모습. 최병옥 어르신이 밖에 나와 부채질을 하고 있다. 사진/이우찬 기자
 
22일 오전 자택에서 만난 김덕례(80·여)씨는 “일주일에 경로당에 3번 정도 가. 화투도 치고, 시원하니까”라고 말했다. 양지마을 가까이에는 양지마을경로당과 덕산경로당이 있는데, 경로당은 에어컨이 나와 무더위를 피하고 이웃들과 소통할 수 있는 쉼터와도 같다. 김씨 집에는 선풍기 2대와 딸이 사준 에어컨 1대가 있다. 하지만 에어컨이 가동되는 날은 거의 없다. 그는 “전기세가 무서워서 에어컨 못 틀어. 선풍기도 일 다녀와서 더울 때 잠깐 틀어”라고 했다. 7차례나 다리 수술을 했다는 김씨는 80세가 넘은 고령에도 담배꽁초를 줍고, 풀을 뽑으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양지마을경로당 정수기에서 찬물을 받으러 온 김성자(75·여)씨는 “(동네) 인심이 겁나게 좋다”고 말했다. 또 “(경로당에) 감자도 수박도 가져와. 서로 날마다 먹을 거를 사와. 다들 형편이 괜찮지 않은데 서로 돕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7~8월 더위 걱정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큰 일 났지. 그래도 뭐 더불어 살아내야지”라고 말했다. 김씨는 3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뚫고 2L짜리 물 2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종열(66·남)씨는 양지마을의 가파른 언덕이 시작되는 마을 입구 초입 부근에 산다. 나씨는 “나 같은 사람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낮 기온은 30도였다. 걷기만 해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무더위를 선풍기 1대로 버티고 있는 나씨는 여름철 안부를 묻자 “괜찮아. 나 건강한 체질이다.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더위보다 외로움이 주는 고통이 더 큰 것처럼 보였다.
 
22일 차상위계층인 유모(85)씨 집에는 선풍기 1대와 미니 선풍기 1대가 있었다. 하지만 유씨는 집안이 덥다며 밖에 나와 부채질을 했고, “그늘만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사진/이우찬 기자
 
지난달 31일 이사 온 이모(71·여)씨는 전세로 집을 얻었다. 이씨는 42년째 이곳 주변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당뇨를 앓고 있다. 오른쪽 눈은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 딸 3명에 아들 1명을 키워낸 이씨는 젊을 때부터 가발공, 스테인리스공으로 일했다. 평생 자신의 집을 가져본 적은 없다고 했다. 이씨는 선풍기 1대로 남편과 무더위를 보낸다. 지난해 7월 이사를 온 원광학(58)씨는 동네에서 만나기 힘든 50대다. 동생과 함께 사는 그의 집에는 선풍기 2대가 있었다. 물건 해체작업을 하며 일용직으로 돈을 버는 원씨는 월세 부담이 만만치 않다. 동네 경로당에는 에어컨이 있어 더위를 피할 수 있지만 그는 “아직 경로당에 갈 나이는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쨍쨍 내리 쬐는 더위는 도시보다 먼저 하늘과 가깝게 맞닿아 있는 달동네 어르신들을 괴롭혔다. 시가 지난 2월 서울 거주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4671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폭염 속에 냉방기구 없이 사는 가구는 아직도 160가구에 이른다.
 
21일 오전 나종열씨가 살고 있는 단칸방 모습. 그는 선풍기 1대에 의지한 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는 "나 같은 사람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고맙다"고 말했다. 사진/이우찬 기자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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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