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1. 지난 5일 서울에 있는 한 버스 공영차고지에서 만난 버스 운전기사 박모(48)씨는 뒷문 승차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10년 이상 경력의 박씨는 비 오는 날 버스 뒤쪽에서 달려오며 뒷문 승차를 노리던 승객이 넘어지는 사고를 경험했다. 누구 책임이냐는 물음에 박 씨는 “승객이 다쳤다고 하는데, 기사 책임이지 뭐...”라고 씁쓸한 기억을 꺼냈다. 그는 “회사에 보고하고 보험처리는 됐지. 그런데 수당이 떼였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대부분 기사들이 뒷문 승차로 위험했던 경험이 있을 거야”라며 “앞으로 타면 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2. 17년 버스 운전 경력을 지닌 운전기사 김모(44)씨 또한 뒷문 승차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김씨는 “뒷문 승차하면 카드를 안 찍는 승객이 많다”며 “출퇴근 시간 혼잡할 때 10명 중 8명이 안 찍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2명이 아니냐”고 기자가 되묻자 그는 “8명이 안 찍는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뒷문 승차를 막기 위해 뒷문을 닫으려고 해도 우르르 몰려 타는 승객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김씨는 “앞으로 타시라고 말하면 사람이 많은데 왜 안 열어주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손님도 있다”고 했다.
뒷문 승차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버스 기사들은 승객들이 앞문으로 순서대로 타는 게 가장 좋다고 입을 모았다. 뒷문 승차는 백미러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등으로 승객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버스 운전기사 원모(47)씨는 “승객들이 뒷문으로 가까스로 승차하려고 문에 손을 끼워 넣는 경우가 있는데 백미러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위험하다”고 말했다. 뒷문 승차를 거부할 수 없냐는 질문에 원씨는 “뒷문 승차가 안 된다고 말하면서 승객이랑 싸우게 되면 바로 불친절 신고가 들어온다”고 했다. 뒷문 승차가 위험하지만 승객이 요구하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2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버스종합환승센터. 사진/뉴시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최장우(30)씨는 뒷문 승차로 승객과 운전기사가 싸우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한 여성이 막 출발하려던 버스를 잡기 위해 뒷문을 두드렸지만 운전기사는 뒷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최씨는 “버스가 막 출발할 때였는데, 위험하게 버스를 치는 상황이었다”며 “뒷문 승차로 승객이 넘어지다 다치면 기사도 책임이 있어 돈을 물어주게 된다고 들었다”고 했다. 무리한 뒷문 승차로 사고가 나면 운전기사 박씨 사례처럼 운전기사는 수당이 떼이곤 한다.
문제는 승객들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대다. 어느 기사는 스스로 원활한 승차를 위해 출퇴근 시간만큼은 뒷문 승차를 불가피하게 유도하기도 한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앞문 승차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기사도 출퇴근 시간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승객이 우르르 몰리는 정류장에서는 하차를 위해 뒷문을 열면 대기했던 승객들이 뒷문으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기사로서는 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승객에게 앞문 승차를 이야기하면 역성을 내는 승객도 있다.
승객이 몰리는 시간대에 우르르 뒷문 승차를 하면서 버스카드를 찍지 않는 승객도 문제다. 버스 운전기사 김씨는 “서울시에서도 손해를 많이 볼 거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부터 버스준공영제를 도입한 시는 운송수입 부족분을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해 서울시내버스는 2200억원가량을 시 예산으로 지원받았다. 뒷문 승차로 버스카드를 찍지 않는 승객이 많을수록 세금은 줄줄 샌다.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의 생각을 어떨까. 직장인 김현중(30)씨는 뒷문 승차가 달갑지 않다. 김씨는 “사람이 많을수록 순서를 맞춰서 앞에서부터 타고 들어가는 게 맞다”며 “한참을 기다려서 앞으로 탔는데 뒤에서 탄 사람이 바로 자리를 차지하면 약이 오른다”고 말했다. 직장인 유모(29)씨는 “뒤로 타지 않으면 앉아서 갈 수가 없다. 처음에는 맨날 앞으로 탔는데 뒤로 탄 승객이 항상 앉는 거다. 화가 나서 나도 뒤로 탔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뒷문 승차와 관련된 행정 지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요금징수와 이동 편의를 위해 앞문 승차·뒷문 하차로 지도하고 있다”며 “출퇴근 시간대에는 안전 이상이 없는 때 뒷문 승차를 허용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버스 회사마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뒷문 승차를 금지하는 스티커를 붙인 버스가 있을 뿐이다.
한 서울시내버스 뒷문 쪽에 뒷문 승차 금지를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이우찬 기자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