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김하늬기자]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슈퍼리치' 증세안에 시동이 걸리면서 내달 초 발표될 올해 세법 개정안에 증세안이 담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정청은 조만간 본격적인 증세 논의에 착수해 조속히 입장을 밝힌다는 방침이다.
23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올 세법 개정안에 증세를 포함시킬지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증세를 하더라도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며 증세 추진을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국가 재정전략과 부처별 재정전략을 다시 점검하고, 기재부가 충분히 반영해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지시했으며 기재부는 증세안 검토에 들어갔다. 기재부 세제실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적으로 보고하면 증세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당초 기재부는 올해 세법 개정안에는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의 인상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9일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이 이전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와 같다는 비판이 나오자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특히 지난 20일 문재인 정부의 앞으로 5년간 재정집행 계획을 짜는 첫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증세안에 불을 지폈다.
추 대표는 초대기업·초고소득자 대상 과세구간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부자증세' 논란을 촉발시켰다. 그는 법인세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금액)이 2000억원을 넘는 기업에 대해 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또 소득세 최고세율도 과세표준 5억원 초과는 현행 40%에서 42%로 인상하자고 했다.
기재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연소득 5억원 초과 고소득자 4만명의 세율을 40%에서 42%로 올리면 1조800억원이 더 걷힌다. 또 과표 2000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3%포인트 올리면 112개 기업이 2조7000억원의 법인세를 더 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여당 안대로 소득·법인세율을 올릴 때 기대되는 세수 증가분은 연간 3조5000억~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추미애 대표안은 문재인 정부 증세 정책의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최대 입법 현안인 추경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부자증세 추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의원 입법 형태로 이 같은 증세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내달 발의 예정인 세법 개정안에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자만을 대상으로 한 증세안이 담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책위원회와 정부가 논의할 부분이지만 아마 증세는 초고소득자나 초대기업으로 한정될 것"이라며 사실상 추미애 대표가 앞서 제안한 증세론대로 당정 협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당정청도 증세와 관련해 발빠르게 움직여 조속히 입장을 도출하기로 했다. 우선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오는 25일 예정된 국무회의의 테이블에 올라온다. 국회에서도 24일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주제로 당정 협의회가 열리는데 세제개편 방향도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주당의 증세 추진에 대해 야3당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향후 입법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세율 조정이 국회 입법사항인 만큼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권의 반발도 거세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대기업 증세"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당은 "공약 이행을 위해 증세를 검토하더라도 재정 운영의 효율성과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살펴 최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앞서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 정부 1호 추가정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정부가 추경안을 제출한지 45일 만이다. 정부는 11조원 규모의 추경중 70%를 올 추석(10월4일) 전까지 집행하기로 했다.
부처별로는 중소기업청이 정책자금 융자, 모태펀드 출자 등 청년 사업자 금융지원 사업 예산을 신속히 집행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민간 위탁 및 공모 사업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사업 계획 수립 내실화 및 모니터링에 중점을 두고 취업성공패키지, 고용창출장려금 등 민간기업 채용과 연관성이 높은 사업 예산을 집중적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세종=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