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며 군사작전 확대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정작 미국 경제는 치솟는 유가에 시름을 앓고 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지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에너지 가격 충격이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으로 이란을 압박하면 할수록 경제적으로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4번가와 브라이언트 거리의 셸(Shell) 주유소에서 모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6달러를 넘어섰다. (사진=UPI 연합뉴스)
"에너지 가격 충격, 가장 파괴적인 인플레 요인"
8일(현지시간)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41달러로 일주일 만에 14% 상승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6달러를 넘는 곳도 등장했습니다. 특히 같은 날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오일 쇼크'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문제는 유가 상승이 단순히 에너지 가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디젤과 항공유 가격도 함께 상승하면서 물류비와 항공료, 식료품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악시오스>는 "에너지 가격 충격은 역사적으로 가계와 기업에 가장 파괴적인 물가 상승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중동 전쟁 이후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부각되면서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PIMCO)의 댄 아이바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이후 성장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시장에 상당한 긴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채권시장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거론됩니다. 블랙록의 제프리 로젠버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유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과 노동시장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며 "채권시장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주식시장 역시 같은 이유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마켓워치>는 "투자자들이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변수는 유가"라며 "전쟁 자체보다 전쟁이 글로벌 원유 공급망을 흔들 때 시장 충격이 커진다"고 분석했습니다.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연합뉴스)
"유가 100달러 넘으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0.6~0.7%p↑"
국제 경제에도 파장이 번지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할 경우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약 0.6~0.7%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필립 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전쟁이 장기화되면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고 경제성장률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입니다. 그는 이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 핵 위협의 파괴가 끝나면 급격히 하락할 단기 유가는 미국과 세계, 안전과 평화를 위한 아주 작은 대가"라며 "바보들만 다르게 생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날에도 기자들과 만나 이란을 "지구상의 거대한 암적 존재”라고 비난하며 안보 위협이 해소되면 유가가 매우 빠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도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세가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정확한 시점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유가 불안은 몇 달이 아닌 '몇 주' 내 해결될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은 중동 긴장 고조로 불안해진 에너지 시장을 진정시키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상황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미국 유권자들은 유가 상승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시버트 파이낸셜의 마크 말렉 CIO는 "기름값은 사람들이 매일 체감하는 인플레이션 지표"라며 "유가 상승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로이터>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가 상승 시 이란에 대한 군사 대응 지지를 줄일 것'이라는 응답이 45%에 달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장기간 유지될 경우 인플레이션과 금리 전망, 소비심리까지 동시에 흔들릴 것을 우려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유가가 100달러 이상에서 장기간 유지될 경우 미국 경제성장률이 약 0.6%포인트 이상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클레이튼 시글 선임연구원은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에 일정한 유예기간을 줬지만 지난주 말 그 기간이 끝났다"며 "현재 하루 약 2000만배럴 규모의 공급 부족이 글로벌 석유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으며 해결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