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갑질, 용어부터 재고해야

입력 : 2017-08-08 오전 6:00:00
라파예트가 기초한 프랑스 인권선언문 제1조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탄생할 때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는 천부인권설을 재천명한 것이다. 우리도 뒤질세라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인권은 과연 잘 존중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헌법을 장식하는 멋진 액세서리 정도에 불과한가.
 
한국처럼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프랑스 인권선언문에 명시된 인간의 자유와 평등보다 스펜서가 주장한 적자생존의 논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우리 사회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이로 인해 구시대의 노예제도를 연상시키는 주종관계의 광경들이 현재도 버젓이 재현되고 있다.
 
요즘 한국 언론이 줄기차게 보도하는 갑질 논란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최단 시간에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에서는 무한경쟁 속에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올라서는 비민주적인 행태가 비일비재했다. 21세기 포스트모던 사회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풍경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종근당 이장한 회장이 운전사에게 욕설을 퍼부어 언론을 도배한 일, 대한민국 육군 서열 3위인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과 그의 부인이 공관 병사들에게 온갖 모욕과 학대를 가해 소란을 피운 일 등. 연속으로 일어나는 갑질 논란을 대하고 있노라면 2014년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노예 12년’ 속 백인이 흑인을 학대하는 참혹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이 150년 전에 이뤄졌건만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구시대의 노예제가 극성을 부리는 듯하다. 한국 언론은 권력과 돈을 가진 강자가 약자의 인권을 짓밟는 일을 ‘갑질’이라 명명하고 있지만 이 표현 또한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언론은 갑질한 자들의 비민주적 행위를 양파껍질 벗기듯 보도하며 소란을 피우지만 이런 보도 행태 또한 적절한 것인가. 이런 보도행태보다는 왜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진단하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닐까.
 
인권의 온상지인 프랑스는 어떠한가. 라파예트의 조국인 프랑스에서도 모든 사람의 인권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처럼 직장에서 사장이나 상사가 아랫사람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프랑스는 일터에서 근로자의 권리와 존엄성이 침해되는 것을 아르셀망 모랄(harcelement moral)이라 부른다. 아르셀망 모랄은 고용주와 노동자, 혹은 두 노동자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노동법 L1152조 1~3항에 확실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직장에서의 폭력행위, 모욕, 혹사(과중한 업무), 왕따, 성희롱 등을 말한다.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직장인 6명 중 1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셀망 모랄의 피해자 중 어떤 이들은 공황장애를 앓고, 또 어떤 이들은 우울증에 빠진다. 심하면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02년부터 이를 범법행위로 간주하여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가해자는 형사상 범법자로 인정되어 2년의 징역형에 처해지거나 3만 유로(한화 약 40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만 한다.
 
여변호사 알리나 파라귀이오스(Alina Paragyios)는 프랑스 직장에서 최근 아르셀망 모랄의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를 경제위기에서 찾는다. 일례로 지난 2012년, 전 프랑스 텔레콤 사장인 디디에 롱바르(Didier Lombard)는 아르셀망 모랄의 가해자로 입건되어 수사를 받았다. 2008~2009년 프랑스 텔레콤 직원 정리해고 당시 사원들을 모욕하고 학대함으로써 이를 견디지 못한 많은 사원이 자살을 했다는 혐의였다. 아르셀망 피해자 협회(AVHT)의 파트릭 베르통셀리 회장은 “국가(노동부, 보건부 등)가 나서서 아르셀망 모랄에 대한 책임을 기업이 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갑질 논란이 제기된 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언제까지나 강자가 약자의 인권을 짓밟고 말살하는 행위를 ‘갑질’로만 명명할 것인가. 갑질 이전에 이는 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행위이므로 이에 걸 맞는 법적 용어와 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법만으로 근절할 수 없기에 피해자들이 협회를 만들어 직접 투쟁하며 정부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도 이와 같은 움직임이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강자가 약자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봉건적 사고를 하루 빨리 털어내야 이러한 문제는 개선될 수 있다. 한국이 포스트모던 소사이어티 그룹에 들어간 지 벌써 20여년이 넘었다. 하드웨어는 최첨단인데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구닥다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헌법 제11조가 명시하듯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이 법이 장롱에 보관된 액세서리가 아닌 실질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구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현대화가 급선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언론은 지금 당장 나서야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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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