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원전 제로 정책'에 대한 단상

입력 : 2017-07-11 오전 6:00:00
강대국이 되는 기본 요건은 에너지의 독립과 안정이다. 에너지는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동력으로 화석연료와 원자력, 태양열 등을 이용해 얻고 있다. 화석연료는 석탄·석유 등을 말하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에너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석탄과 석유 모두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으며 석유는 주로 중동 지역에 편재되어 있다.
 
한국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다. 석유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1970년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은 두 차례에 걸쳐 석유파동을 불러왔고 물가를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게 했다. 이때 한국이 가동하기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는 탈석유화에 큰 공헌을 했다. 1980년대 이후 원전은 발전을 거듭했고 한국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눈부신 역할을 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전기의 약 40%는 원전에서 오고 있다. 원전은 한때 값싼 전기를 제공하고, 이산화탄소(CO2)가 발생되지 않아 지구 온난화 현상을 줄이는 클린에너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한 번 사고가 나면 인류 대재앙을 불러온다. 1986년 구소련(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참사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참사는 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커다란 리스크를 안고 있는 원전을 없애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그는 40년 후 ‘원전 제로’인 한국을 꿈꾸며 그 신호탄으로 고리원전 1호기 폐쇄결정을 내렸다. 한 번의 사고로 인류 대재앙을 불러올 불씨는 사전에 차단함이 지당하다. 그러나 한국 산업의 원동력이고 경제발전사 자체인 우리 원전을 40년이란 짧은 운영기간을 거쳐 없애는 것은 과연 온당할까.
 
한국처럼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는 어떤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량은 한국에 비해 적지만 원자로는 79기로 우리보다 3배나 더 많다. 여기서 얻는 전기는 전체 발전량의 75%에 달하니 과연 원자력의 나라라 아니할 수 없다. 원전 가동으로 얻은 전기를 이웃인 스위스, 스페인, 영국 등에 수출하고 기술력을 해외에 파는 원전 수출국 1위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참사 이후 프랑스에서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제고와 재생 에너지 개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2012년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는 2025년까지 원전에 의한 전력 생산을 50%로 줄일 것을 공약으로 걸었다. 그리고 2016년 말까지 알자스 지방에 있는 페센아임(Fessenheim)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원전에는 약 10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어 그들의 향후 처리와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노동조합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전 운영기간을 2017년 1월10일까지 연장하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아직도 타협을 보지 못해 폐쇄하지 못한 상태다. 이처럼 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산업정책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새 대통령은 지난 6월 프랑스 환경운동의 아이콘인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를 환경부 장관에 임명하고 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올랑드 정부를 승계할 것을 밝혔다. 따라서 지난 5일 윌로 장관은 2025년까지 원전의 전력 생산을 50%로 줄이겠다는 프랑스의 목표를 재확인 했다. 그는 ‘기후 변화에 대한 행동 플랜’을 소개하고 질문을 받는 기자회견장에서 “2025년까지 이 목표치가 달성되길 희망한다”, “불가역적인 역동과 도전이 일단 시작된 이상 탄력이 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채택한 에너지 변화법을 지키기 위해 몇몇 원자로를 폐쇄해야 할 필요성도 천명했다. 그러나 이에 도달할 수단은 제시하지 않았다.
 
프랑스 환경단체들은 이 목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재정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타임 테이블 또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린피스는 마크롱 정부에 구체적인 스케줄을 제시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 문제를 화두로 들고 나온 데는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그러나 정부의 원전 제로 정책은 어찌 보면 너무 급진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프랑스처럼 한국도 원전이 국가경제의 근간이고 경제발전 역사 그 자체이다. 이런 역사를 부정하고 갑자기 40년 후 ‘원전 제로국’을 만들겠다고 나오면 여기엔 필시 많은 부작용이 따를 것이다. 프랑스처럼 단계적 이행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국민과 허심탄회한 협의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프랑스는 2012년부터 원전 축소에 대한 강한 의지와 플랜을 가지고 실행에 들어갔지만 원전 제로라는 말은 섣불리 사용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건으로 원전 제로를 외쳤던 일본도 어느 날부터 이 말을 더 이상 들먹이지 않는다. 원전 제로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원전 제로가 과연 타당하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40년 후 원전 제로국을 만들겠다면 거기에 드는 비용과 타임 테이블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원전 제로국만 만들겠다고 노래 부른다면 에너지 정책은 혼란 속에 빠지고 말 것이다. 새 정부는 이 점을 명심해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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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