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 기자] 골판지 상자를 생산하는 영세 제조업체들이 반년도 안돼 또다시 원지 가격 인상 공포에 휩싸였다. 올해 3월 국내 대형 제지회사들이 골판지 원지 가격을 인상한지 5개월만에 2곳의 제지회사에서 원지 가격 인상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번 인상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지난해 7월과 올 3월 인상을 포함해 1년만에 벌써 3번째 가격인상인 셈이다. 골판지 원단과 상자를 제조하는 영세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인상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할 것과 계열사의 전문기업들에게도 연동 인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제지사들이 원지 가격 인상을 강행할 경우 공정거래위원에 신고한다는 방침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동원페이퍼와 아진피앤피는 이달 초 이들이 거래하는 골판지 원단 제조사에 원지가격 인상을 통보했다. 골판지 산업은 '원지(이면지·표면지·골심지)→원단(골판지)→상자'로 이뤄진다. 원지는 골판지 산업의 시작점에 위치한 품목으로, 가격 인상은 후속 시장인 원단, 상자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원지의 가격인상이 원단과 상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형 제지사들이 원단과 상자 제조 계열사까지 점하고 있다보니 원지 가격만 올릴 뿐 원단과 상자 가격을 그대로 두면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지 제조업이 없는 중소 골판지업체들만 인상된 원지가격에 직격탄을 맞는 형국이다.
이번에 원지 가격인상을 예고한 제지사 역시 계열사 또는 법인 내에 원단과 상자 제조사를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다. 동원페이퍼는 원지부터 원단, 상자 제조까지 모든 과정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태림그룹 내 계열사 중 하나다. 아진피앤피 역시 한 법인 내에서 원지, 원단, 상자 제조를 하고 있는 일관기업이다
이 두 회사가 통보한 원지가격 인상률은 10~20% 가량이다. 동원페이퍼는 톤당 42만원에서 48만원으로, 아진피앤피는 톤당 42만원에서 51만원으로 각각 인상을 예고했다. 특히 태림그룹 계열의 동원페이퍼나 아진피앤피 두 회사가 제지 가격을 인상할 경우 다른 제지사들도 가격 인상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 골판지 업계의 시름은 더 깊은 상황이다.
이번 역시 가격 인상이 이뤄지면 지난해 7월과 올 3월 두 차례에 걸쳐 40% 인상된 이후 반년 만에 또 다시 원지 가격이 인상되는 것이다. 제지업계는 지난해 국내 원지 생산량의 9% 가량을 차지하는 신대양제지에 화재가 발생한 뒤 수급난에 따라 20~30% 원지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이어 올해 초에는 원지의 주재료인 폐지 가격이 인상함에 따라 제지업계는 또 다시 원지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해 공정위로부터 담합 과징금을 부과받은 원지 업체들이 이를 만회하기 위한 꼼수 아니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부터 5년간 9차례에 걸쳐 원지 가격을 담합한 12개 회사에 1200억원 수준의 과징금을 지난해 3월 부과한 바 있다.
현재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은 두 기업을 상대로 내용증명을 발송한 상태다. 동원페이퍼에는 가격 인상시 관련 계열사들의 제품인 원단, 상자 가격부터 연동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조합은 내용증명을 통해 "매번 원지 가격을 인상하면서도 계열 관계에 있는 원단, 상자 가격은 반영을 미뤄 원지 제조업이 없는 골판지 전문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7월과 올 3월 원지 가격 인상시 계열사인 태림포장의 골판지와 상자 가격 거래 내역을 공개해주길 요청했다. 아진피앤피 측에도 마찬가지로 두차례 진행된 원지가격 인상 시점에 골판지와 상자 가격의 거래 내역을 요청한 상태다. 내용증명은 14일 두 회사에 전달될 예정이다.
김진무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전무는 "최근 골판지원지업계의 추가적 가격인상이 통지되고 있다"며 "부당염매행위가 해소되지 않는 일방적 인상행위는 전문골판지기업과 박스기업의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합은 인상통고한 원지업체에 부당함을 지적한 공문을 발송했으며 차후 공정위에 신고조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대형 제지사로부터 원지를 공급받아 판지를 생산하는 중소형 판지공장 내부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