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광복절 경축식의 주인공은 그동안 무관심속에 잊혀졌던 대한민국의 독립투사들과 그 후손들이었다. 문 대통령의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와 눈물로 환호했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는 문 대통령과 4부 요인, 각 정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을 비롯해 독립유공자와 유족, 광복회원, 시민과 학생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청와대 측은 “이번 광복절 기념행사에는 ‘광복’의 진정한 의미에 부합하는 다양한 특별 초청자들이 초대됐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파독 광부·간호사 등이 이번 행사에 새롭게 초청된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날 오전 10시쯤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입장했다. 문 대통령은 짙은 색 정장에 푸른색 넥타이를 맸고 김 여사는 하얀 정장을 입었다. 문 대통령 내외의 좌석 양쪽에는 박유철 광복회장과 위안부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자리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공식 초청을 받아 경축식에 참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경축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 후 오희옥 애국지사의 ‘애국가’ 선창으로 시작됐다.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지금의 애국가가 아닌 독립운동가들이 불렀던 방식인 ‘올드 랭 사인(가곡)’ 곡조에 맞춘 애국가로, 오 지사는 무반주 독창했다. 올해 91세인 오 지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독립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다. 옛 애국가가 끝나고 현재의 애국가가 이어졌고,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4절까지 애국가를 완창했다.
박유철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독립운동 정신은 대한민국의 근간인만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정신”이라며 “독립운동 정신은 내우외환시 국민을 묶는 통합정신이며, 역사와 혈통 공동체인 남북한의 민족 동질감 회복에도 바탕이 되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독립유공자 포상에는 총 128명이 대상자가 됐다. 건국훈장 63명, 건국포장 16명, 대통령 표창 49명 등이다. 현장에서는 고 윤구용·지용봉·황인석·최윤숙·조재형 선생 등 5명의 유족이 대리수여자로 나섰다. 돌아가신 분께 직접 포상한다는 의미를 살려 ‘추서판’에 훈장을 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유족들과 악수를 나누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이어 문 대통령의 경축사가 이어졌고, 참석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 국가에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고 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또 최근 한반도 긴장과 관련해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며 ‘한반도 전쟁 불가’라는 메시지를 제시했고, 독립운동의 공적을 기억할 수 있는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해외동포 지원 등도 약속했다.
당초 20분간 예정됐던 경축사는 39차례의 박수갈채로 지연돼 30분간 이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역대 광복절 경축사에서 39번이나 박수가 나온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경축사가 끝나자 뮤지컬이 공연됐다.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으로 위장해 독립운동자금을 댔던 고 김용환 선생의 이야기다. 김정숙 여사 등 많은 내빈들이 공연을 보면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뮤지컬이 끝나자 광부와 간호사, 군인, 소방대원, 경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으로 분장한 연기자들이 올라와 합창단과 함께 노래 ‘그날이 오면’을 합창했다.
광복절 노래를 제창하고 문 대통령 내외는 김영관 애국지사와 독립유공자 후손 배국희씨 등과 함께 무대 위에 올랐다. 김 지사와 배씨가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자 문 대통령 내외 역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삼창을 했고 경축식도 마무리됐다.
한편 문 대통령 내외는 경축식에 앞서 서울 용산 효창공원을 찾아 백범 김구 묘역과 삼의사 묘역(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임정요인 묘역(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을 차례로 참배했다. 현직 대통령이 이곳을 참배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다.
이날 오전 묘역에는 굵은 비가 내렸지만 문 대통령은 독립지사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헌화와 참배 때는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식을 거행했다. 문 대통령은 직접 김구 선생 영전에 바칠 화환을 들고 3보 앞으로 이동해 묘역 앞에 내려놓은 후, 90도로 허리를 굽혀 참배하고 분향했다. 방명록에는 ‘선열들이 이룬 광복,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 2017. 8. 15 문재인’이라고 썼다.
이날 참배에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오진영 보훈처 보훈선양국장, 성장현 용산구청장, 정양모 백범김구기념관장 등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이 함께 했다.
박수현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어제 독립유공자 오찬 중 2019년 상해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말씀하셨는데, 오늘 아침 보도에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나왔다”며 “오늘 참배도 그와 관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 대통령께서 외국에 나가실 때마다 각종 행사 제일 앞줄에 유공자나 애국자들이 훈장을 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셨다”면서 “우리나라도 독립유공자, 참전용사 등 애국하신 분들을 위한 보훈을 강화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묘역을 찾아 분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