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원석 기자] 국내 제약사들간의 특허분쟁이 늘고 있다. 자국산업 보호 명목 하에 국산신약에는 특허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과거 관례와는 다른 분위기다. 내수 시장 둔화와 신제품 기근으로 생존경쟁에 몰리자 국산신약에도 복제약 출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7일 의약품 특허조사기관인 비투팜의 GLAS데이터에 따르면 제일약품, 대원제약, 안국약품, 경보제약 등 23개사는 유나이티드제약을 상대로 기능성소화불량 치료제 '가스티인씨알정'의 권리범위확인(소극적) 심판을 지난 4일 청구했다. 권리범위확인 심판은 자사가 개발한 복제약이 원개발사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게 요점이다.
가스티인씨알정은 유명 기능성소화불량 치료제 '모사프리드'를 업그레이드한 개량신약이다. 1일 3회 복용 횟수를 1일 1회로 줄였다. 유나이티드제약이 약 7년 간 50여억원을 투입해 개발에 성공한 제품이다. 2016년 9월 국내 출시됐다. 출시 이후 지난 6월까지 누적 64억원의 처방액을 기록해 시장에 안착했다. 올해는 처방액 1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가스티인씨알정 발매 1년만에 특허소송 피소를 당해 위기에 빠졌다. 경쟁사들이 특허를 깨면 복제약 출시가 10년 이상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유나이티드제약은 가스티인씨알정의 특허(조성물)를 2034년 3월까지 등록했다. 해당 특허는 1일 1회 복용만으로 약물이 지속 방출하게 하는 핵심기술이다. 1심 심결이 나오려면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다만 특허권자 또는 청구인이 항소를 제기하면 복제약 상용화가 늦어지거나 보류될 수 있다.
유나이티드제약은 최대 매출 국산 개량신약의 특허를 깬 업체로 잘 알려져 있다. 700억원대 한미약품 고혈압복합제 '아모잘탄' 특허소송에서 승소해 2015년 복제약을 출시했다. 또한 한미약품과는 80억원대 중성지방치료제 '페노시드' 특허소송을 진행 중이다.
국내사끼리 특허분쟁은 유나이티드제약뿐만이 아니다. 유나이티드제약을 포함해 22개사 아모잘탄 특허소송에 참여했다. 대웅제약은 2016년 17개 국내사와 700억원대 소화성궤양용제 '알비스' 특허소송에서 패소했다. 수십개 알비스 복제약들이 출시됐다. 한림제약 골다공증치료제 '리세넥스엠'과 '리세넥스플러스'에도 18개사가 특허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피엠지제약은 200억원대 관절염치료 천연물의약품 '레일라'로 15개사와 특허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특허란 새로운 기술을 발명한 자에게 부여되는 독점권리다. 특허가 만료되면 누구나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소송을 통해 특허를 깨면 조기에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 독점판매 기간이 짧게는 1년 또는 길게는 10년가량 줄어드는 셈이다. 복제약들이 출시되면 매출 절반이 빠질 수도 있어 원개발사에게는 위기가 된다.
과거 제약업계는 국산신약에 특허소송 청구를 꺼려했다. 상생 발전을 저해한다는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칫 자사가 개발한 국산신약에도 특허소송이 제기돼 부메랑을 맞을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국내사들이 생존 경쟁에 내몰리면서 국산신약에도 특허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내수 시장 성장률이 최근 5년 동안 1% 미만으로 둔화됐다. 특허만료를 앞둔 글로벌 신약들이 줄어 신제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신약에 특허소송을 제기했다가 악화된 제약업계 여론 때문에 소를 자진취하한 일이 있을 정도로 국산신약에 대한 특허 도전에 보수적인 입장이었다"며 "최근에는 상생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면서 국산신약에도 서슴 없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