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한진그룹 소속 재단들의 공익사업 지출이 저조하다. 공정위가 재벌집단 재단 운영 실태를 들여다 볼 방침인 가운데, 시민단체와의 마찰 등 취약점을 보이는 한진이 타깃으로 거론된다. 일감몰아주기로 한진과 붙었지만 패소한 공정위의 새로운 반격 카드가 될 수 있다.
앞서 1일 서울고법 행정2부는 공정위가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한 일감몰아주기로 대한항공에 물린 과징금에 대해 대한항공 손을 들어줬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정을 근거로 과징금을 적용한 첫 사례였지만 예봉이 꺾이며 체면을 구겼다. 공정위 관계자는 7일 “상고 방침을 세우고 구체적인 진행 계획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불꽃이 다른 곳으로 튈 수도 있다. 한진은 공익법인을 두고 시민단체들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앞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집단국이 신설되면 대기업집단의 공익재단 운영 실태를 엄격하게 분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업집단국은 이달 출범한다.
공익법인은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받지만 설립 목적과 달리 기업집단의 계열사 지분을 장기 보유하며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증여세 면제 5% 룰을 악용한 편법상속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한진 창업주 조중훈 회장은 타계 직전까지 보유하고 있던 대한항공과 (주)한진 주식 대부분을 인하학원과 정석학원, 일우재단 등에 넘겼다. 증여 당시 김종선 전 정석기업 부회장이 인하학원과 정석학원의 이사장을 맡아 편법상속에 대한 비판 여론을 피하려고 했으나, 두 학원이 합쳐진 정석인하학원의 현 이사장은 조양호 회장이다. 모친 김정일씨는 정석기업과 대한항공 주식을 정석물류학술재단에 증여하고, 본인이 직접 이사장에 올랐다. 또 일우재단은 부인 이명희씨가 이사장이다.
이들 공익법인은 한진칼, (주)한진, 대한항공 등 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주식을 5% 이내로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 일부를 팔아 공익사업에 활용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연간 총 수입에서 공익사업에 지출하는 비중도 극히 낮다. 정석물류학술재단은 지난해 총수입 14억3031만원 중 3억2784만원(22.9%)만 목적사업비로 썼다. 일우재단도 총수입 22억8691만원 중 9억2850만원만 지출했다. 대신, 이들 재단의 자산은 불어났다. 추후 지배력 강화 목적의 지분 추가 매입 가능성이 있다. 정석인하학원의 경우, 계열사로부터 현금을 증여받아 타 계열사 우회지원 창구로 활용된다는 의혹도 있다. 실제 지난 2월 다수 계열사들로부터 총 45억원을 증여받아 다음달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52억원)했다.
참여연대와 인천지역 시민단체는 정석인하학원의 ‘족벌경영’을 비판해왔다. "말로만 공익재단이며, 실체는 사익재단"이란 주장이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인하대병원에 카페를 내며 특혜 시비가 일기도 했다. 교육부는 한진해운 투자 손실(130억원) 관련, 인하대에 최순자 총장 등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시민단체는 재단 이사장인 조양호 회장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학교 측은 재단과 무관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과거 ‘인하대의 주인은 본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 사장은 정석인하학원의 이사다.
한편 대기업집단의 재단 유용 행태를 막기 위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정치권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법안이 계류 중인 가운데, 공익법인 관리감독기구인 시민공익위원회를 신설하자는 법안이 최근 추가 발의됐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