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리대의 유해성 여부가 사회문제화 되는 등 화학물질 공포증(케모포비아)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방치할 경우 지나친 우려와 걱정으로 사회 불신과 생산 활동의 위축 등 경제·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지 지난 9월26일 국가미래연구원 스튜디오에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의 의견을 들어 봤다. 대담은 황희만 전 MBC부사장이 맡았다.<편집자>
-황희만: 지난 8월 달걀 살충제 문제가 터지고, 또 생리대 휘발성유기물질(VOC) 문제와 관련해 화학제품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증폭되고 있다. 즉 케모포비아(Chemophobia)라고 하는 화학제품에 대한 거부감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어떤 현상인가.
▲이덕환: 우리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이르러 이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단순히 화학제품뿐만 아니라 우리가 소비하는 음식, 생활화학용품, 가공품 심지어 환경에 존재하는 화학물질 전반에 대해서 한편에서는 극단적인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극도의 기대감을 표시하는 측면이 있다.
살충제 계란 문제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함이 노출됐다. 전문성도 행정력도 체계도 없고, 엉망진창이라는 것이 드러나버렸다. 특히 40년 전 금지된 살충제(DDT), 이것이 어떻게 지금까지 토양에 잔류하면서 닭과 달걀을 오염시킬 수 있었는가.
이것에 대해 정부도 관심 없고 국민들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원인을 밝혀야 한다.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를 통해서 밝혀진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약관리 실태와 양계장관리실태가 엉망이었다는 것이고, 또 DDT가 정말 금지되어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황희만: 그럼 현실적으로 실제 달걀이 어느 정도 살충제 영향을 받았거나 다른 화학물질에 오염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데이터는 없는 것인가.
▲이덕환: 이번 살충제 문제는 살충제로 달걀이 오염돼 소비자가 그것을 섭취해서 심각하게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양계장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돼 있는, 더 정확히 말해 양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은 살충제들 10여 종류가 양계장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었고 어느 누구의 관리도 받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위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정부의 양계장이나 농약관리 실태가 엉망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문제다.
"VOC, 인체에 좋은 물질 아니지만 맹독도 아냐"
-황희만: 생리대의 유해물질 검출문제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덕환: 상당히 난감하다. 세계적으로 처음 발생한 일은 아니다. 2014년도 미국에서 우리와 똑같은 내용의 폭로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슈가 되지 않았다. 어느 언론도 집중적으로 보도하지 않았고, 생리대를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이라고 정부기관이 관리하게 되어있는데, 거기에서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유는 시민단체의 폭로가 그렇게 신뢰하기 어려운 내용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국내 여성단체 한 곳이 그 발표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유통되는 생리대가 안전한지 관심을 가지다가 어느 대학의 환경공학을 전공하는 전문가하고 연결이 되면서 VOC라는 성분이 국내 생산 생리대에서 검출됐다는 사실을 지난 3월 달에 발표했다. 그런데 그 때는 어느 누구도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8월 중순 살충제 달걀사건이 터지고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 우연한 기회에 그 중 검사 대상이었다고 알려진 제품 하나의 이름이 덜컥 언론에 공개됐다.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검출 실험을 했던 전문가가 기자의 묘한 질문에 별 생각 없이 제품이름을 발설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거기에서 폭발적으로 퍼졌다.
제조사는 환불조치를 하고 식약처는 다른 전문가가 한 실험결과를 대신 발표하는 일이 생겼다. 식약처는 전국에 유통 중인 800~900여종의 생리대를 전부 수거해 VOC 검사를 해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식약처의 전수조사 결과 발표로 이 문제가 가라앉을 것이냐, 그렇게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VOC는 휘발성 유기화학물인데 벤젠, 톨루엔 등 우리가 들으면 거북한 물질들이 많다. 그렇지만 화학물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400여 종의 유기화학물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물론 VOC는 인체에 좋은 물질은 아니다. 그렇다고 가까이 하기만 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주는 맹독성 물질 역시 아니다. 검출된 양도 극히 소량이다. 뭔지도 제대로 모르겠다는 화학물질이 6마이크로그램 정도 들어있는 생리대를 사용했더니 여성이 심각하게 부작용을 겪었다는 것은 화학을 전공한 제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황희만: 현실적으로 이런 생리대를 사용해 부작용을 느꼈다는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덕환: 이번에 생리대를 구입해서 뜯어보기도 했다. 1회용 생리대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인데, 놀라운 것은 생리대의 올바른 사용법이나 위생적인 사용법에 대해 여성들이 어디에서도 교육을 못 받았더라는 것이다.
생리대 구조는 바깥에 방수를 위해 비닐막이 있고 그 안에 고분자로 된 흡수층이 있고, 안쪽으로는 면으로 만든 내피가 있다. 유아용 기저귀와 구조가 똑같다. 그런데 바깥에 방수용 비닐이 있기 때문에 통풍이 안 된다. 그 상태로 분비물이 배설되면 온도는 40도 가까이 되고 통풍은 안 되고 습기는 많고 그 상태로 몇 시간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주변 여러 분들에게 물어봤더니 경우에 따라서는 6~9시간도 착용을 한다고 한다. 보통 대장균은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천배 정도 증식된다. 6시간 착용했다고 하면 엄청나게 증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보건복지부가 나서야할 사안이다. 질병관리본부를 동원해 여성들에게 일회용 생리대가 일반화 돼 있는데 이 생리대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혹시라도 잘못된 사용법 때문에 문제를 겪는 경우는 없는지 조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제대로 된 생리대 사용법을 홍보하고 교육해야할 것 같다. 제가 알기로는 생리대의 적정 사용시간은 3시간이다. 기저귀도 마찬가지다.
"좋은 물질, 나쁜 물질 따로 있는 것 아냐. 올바른 사용법 중요"
-황희만: 너무 겁내서도 안 되겠지만 안정성은 최대한 보장을 해야한다. 특히 화학물질에 대해 좋은 것도 있다는 양면성을 말씀하셨는데.
▲이덕환: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화학물질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 두려움, 공포가 문제라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사회에서는 화학물질에 대해 상상할 수 없는 기대를 하는 측면도 있다. 대표적으로 건강기능식품이 그렇다.
‘건강에 좋습니다’ 이런 광고도 있는데 세상에 이것만큼 무서운 말이 없다. 건강기능식품은 의약품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질병을 치료한다는 주장을 하면 안 된다. 식품도 아니다. 식품이라는 것은 독성이 낮고 일반적으로 먹으면 영양공급 수단으로 쓰는 것이다. 즉 건강기능식품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대부분 이것을 의약품으로 생각하고 엄청난 효능을 기대한다. 그런데 건강기능 식품을 지정하는 과정이라든가 절차라든가 현실을 보면 너무나 실망스럽다. 국내에서 식약처도 제대로 관리 못하고 있고, 기업도 이것을 아주 이상한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으며, 소비자는 과도한 기대로 건강을 망치고 있다. 몇 년 전에 백수오 사건이 있었다. 지금도 어떤 기업에서 어린이들 키 크는 요구르트가 나왔다고 해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도 말이다.
-황희만: 정확한 정보를 모르니까 사람들이 화학제품에 좋은 성분이 있다고 하면 믿게 되는 것 아닌가.
▲이덕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화학물질의 정체를 알고 그 생리적인 기능이나 독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굉장히 좋겠지만, 그러려면 화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소비자가 화학자가 될 수는 없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조금 바꿔서 ‘독도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약도 잘 못 쓰면 독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유해물질이 따로 있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물질을 내가 어떤 용도로,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활용하는 가에 따라 내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잘못 사용해 내 건강을 해치는 치명적인 독소가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과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 적절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리 기적같은 약이라도 너무 많이 먹거나 잘못 먹으면 정말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근본적으로 좋은 물질과 나쁜 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나쁜 물질이 약이 될 수 있고, 좋은 물질이 독이 될 수도 있다.
-황희만: 좋은 것이 독이 될 수도 있고, 독도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겠다. 다만 어느 정도로 해야 독이 되고 약이 될지 잘 모르지 않는가.
▲이덕환: 정부가 인정해주는 제품, 기업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추천하는, 좋은 기업의 제품 등을 사용법에 맞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안타까운 일이 많았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다. 이것 때문에 소비자들은 정부도 신뢰할 수 없고, 기업도 전문가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생활화학용품이라 하는 것, 가공식품이라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다. 이제 30~4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케모포비아를 부추길만한 사건들이 연달아 불거지고, 정부의 관리가 어처구니없이 실패하는 바람에 소비자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
우리의 가공식품이나 생활화학용품의 사용이 아직은 그렇게 선진국 수준에 와 있지 않다. 지금 선진국 국민들은 우리보다 훨씬 건강하고 품질이 좋은 가공식품, 편리한 생활화학용품을 아주 적극적으로 안심하며 사용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전문성을 제고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해주어야겠지만 소비자들도 눈을 떠야한다. 엉터리 정보, 노이즈 마케팅, 황색 저널리즘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좋은 제품이라고 해서 너무 많은 양을 오랜 시간에 걸쳐 자주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제조사가 요구하고 추천하는 사용방법을 지키면서 지혜롭게 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나친 두려움이나 공포심은 가질 필요가 없다.
지난 9월26일 국가미래연구원 스튜디오에서 케모포비아 관련 좌담회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황희만 전 MBC부사장이다. 사진/국가미래연구원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