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에 대해 “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군사적 행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와야 한다는 촉구도 이어졌다. 북핵문제 해결 방안으로 군사적 옵션 대신 평화적 노력에 방점을 둔 우리 정부의 방침에 힘이 실리는 한편 ‘한반도 운전자론’ 등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해온 균형외교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의 단독·확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코리아 패싱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문 대통령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과도 우애관계를 갖게 됐으며 이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서로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CN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외교를 중시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도 더 돈독하게 만드는 균형있는 외교를 하고자 한다”고자 언급한 바 있다. 미·중 간 균형외교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등에서는 “시대착오적인 광해군 코스프레를 즉각 그만둬야 한다”(강효상 대변인)는 반론이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향후 외교무대에서 문 대통령의 입지가 높아질 여지가 생겼다. 문 대통령도 “균형외교는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나아가서는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위해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것”이라며 “중국도 당연히 포함되고 아세안(ASEAN)과 러시아, 미국, 유럽연합(EU)와의 외교관계를 다변화해서 균형있는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대북 제재·압박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원칙에 트럼프 대통령이 일정부분 공감한 것으로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공모함·핵잠수함 등의 미 군사전력이 한반도 주변에 배치됐음을 언급하면서도 “이런 부분을 실제로 사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와 우리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북한은 물론 전 세계 시민들에게 좋다.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고싶다”고 덧붙였다. 다만 북미 간 직접대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날 회담과 기자회견에서는 한미 양국 간 확고한 동맹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은 것이 그 예다. 한국과 중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 중 이른바 ‘3대 원칙’(사드 추가배치, 미국 MD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배제)이 미국과의 갈등요소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한국이 그 세 가지 영역에서 주권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3대 원칙의 공식화를 경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에 대한 언급을 피함으로써 논란이 생길 여지를 차단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 정부가 요구해온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는데 최종 합의한 것도 성과다. 현재 한미미사일지침에서 우리 군의 탄도미사일 사거리와 탄두중량을 각각 800km, 500kg으로 제한하는 가운데 양 정상의 합의는 우리 군 역량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에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주문하는 것으로 말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투기든 미사일이든 미국 자산이 가장 훌륭하다.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장비를 (한국이) 주문할 것이고, 이미 승인 난 부분도 있다”고 말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목록을 놓고 미국 측의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미나토구 영빈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서도 “아베 총리는 앞으로 여러 군사장비를 구입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공에서 (북한 미사일을) 쏴서 떨어뜨릴 수 있다”며 노골적인 무기구매 압박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최첨단 군사정찰자산 획득과 개발을 위한 협의를 즉시 개시하기로 한 것도 한국이 필요로 하는 무기 도입과 별개로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제 편입이라는 후폭풍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최신예 정찰기 '조인트스타즈' 수출이 이뤄지는 것과 동시에 우리 군이 SM-3 미사일을 구입토록 하는 ‘빅딜’이 있을 수도 있다”며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사실상의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로 접어든다고 판단한 중국의 반발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 충무실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