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때 떠나는 식품업계 '두 거목'

제일제당 김철하 대표 '후학양성' 길로…풀무원 남승우 대표 스스로 '경영마침표'

입력 : 2017-11-27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올해를 끝으로 식품업계에 한 획을 그은 두 CEO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눈길을 끌고 있다. '바이오전문가'를 거쳐 국내 1위 식품회사 CJ제일제당(097950)을 이끌던 김철하 대표와 유기농 식품회사의 성장가도를 이끈 남승우 풀무원(017810)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CJ제일제당 대표이사를 맡아온 김철하 부회장(65)은 그룹 정기인사를 통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향후 CJ기술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룹 R&D(연구개발) 경쟁력 강화와 식품계열사 R&D 자문을 맡게 된다.
 
김철하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이 되기 전에 평생을 바이오분야 연구에 매진해 온 '바이오 전문가'로 이름을 먼저 알렸다. CJ제일제당의 경쟁사인 대상그룹 출신이라는 점도 종종 회자돼 왔다. 서울대 미생물학 전공인 그는 1977년 미원(현 대상)에 입사해 1996년 제약사업본부장 이사를 거쳐 2005년 바이오사업총괄 중앙연구소장 전무를 지내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그러던 중 2007년, 라이벌 회사인 CJ제일제당으로 전격 영입된다.
 
대상그룹에서 30년간 연구개발을 이끌던 그의 전문성과 경영자로서의 잠재력에 주목했다는 게 당시 영입 배경이었다.
 
김 대표가 CJ제일제당 대표로 보낸 6년여간의 경영능력도 재조명되고 있다. 2011년 7월, CJ제일제당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이듬해 CJ로 영입된지 4년만에 대표이사 사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 했다.
 
급기야 지난해 9월엔 부회장까지 오르며 그룹내 비오너가 중 유일한 부회장 직함을 달게 된 주인공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뚝심있는 경영스타일도 돋보인다. 2013년 실적 부진에 빠졌을 당시 임원회의에서 "A부터 Z까지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백화점식의 사업형태를 바꿔야 한다. 시장선도 제품,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능한 제품에 역량을 집중하자"라고 독려하며 사업포트폴리오 정비에 나서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글로벌 사업감각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실제 CJ제일제당의 총괄 수장이 된 이후에는 글로벌사업 강화를 진두지휘 했으며 최근까지도 해외기업 M&A에도 속도를 내왔다. 그는 올해 경영에 복귀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복심'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이 회장의 경영공백이 장기화 될 당시에도 손경식 CJ그룹 회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이채욱 CJ 부회장(당시 CJ대한통운 부회장) 등과 함께 CJ그룹 그룹경영위원회에 참여하며 비상경영체제의 한 축을 맡기도 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표면적으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지만, 이 회장이 세대교체에 방점을 찍은 인사를 단행한만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CJ그룹이 'R&D 역량강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김 부회장이 'CJ기술원장'이라는 새로운 보직을 맡아 유능한 R&D 인재들을 양성할 것이란 강한 신뢰와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33년간 오너경영을 이끌어온 남승우 풀무원 대표도 올 연말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다. 남 사장은 일찍이 구성원들에게 65세가 되는 2017년 말 은퇴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남 대표는 줄곧 밝혔던대로 '가족승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지킨다는 계획이다. 실제 풀무원은 남 대표가 경영에서 물러나면 이효율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단독경영체제가 시작된다.
 
풀무원은 한국의 대표적 중견기업이자 국내 최초로 유기농을 시도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기농식품회사이기도 하다. 공동 창업주인 고 원경선 원장이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농장을 설립했고,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생산으로 이어졌다. 1984년 풀무원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남 대표도 창업주의 이러한 철학을 그대로 이어오며 유기농 사업을 확장시켰다.
 
업계 안에선 남 대표가 첫 사회생활을 식품회사가 아닌 건설회사에서 시작했다는 점도 종종 회자되곤 했다. 1970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던 그는 현대건설에 들어갔다. 그런 남 대표가 풀무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교 동창이자 원경선 선생의 아들인 원혜영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손을 잡게 되면서부터다.
 
원씨 부자가 오늘날 풀무원의 설립을 주도했다면 남 대표는 풀무원의 기업화를 이끌며 제 2의 창업을 이끌었다. 1987년 원 의원이 정치에 뜻을 품고 풀무원을 떠나며 남 대표의 독자경영 체제가 이어진지도 '33년'이 됐다.
 
그런 그가 퇴진을 예고한 것은 그의 확고한 경영 철학 때문이다. 평소에도 '회장' 직함 대신 '총괄CEO'라는 직함을 강조했고 가족 승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65세가 되는 2017년말 은퇴하겠다는 뜻을 내비쳐왔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의 입김이 쎈 식품업계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김철하 대표와 오너임에도 오너일가 경영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유지해온 남승우 대표가 나란히 물러나게 됐다"며 "두 인물 모두 불명예 퇴진이 아닌 박수 속에 떠날수 있게 돼 앞으로도 후배 경영인들의 롤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왼쪽)와 남승우 풀무원 대표. 사진/각 사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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