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 기자] 국가 중대사인 헌법개정 작업이 정치권 핑퐁게임으로 전락하고 있다. 쟁점별 릴레이 집중토론을 이어가고 있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상황이 문재인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헌법개정 논의가 얼마나 표류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를 중심으로 개헌에 불을 지피고 발전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자리지만 여전히 개헌의 시작점부터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자문안 흠집내기에 골몰했다. 정파에 따른 자기주장만 내세우니 곧 공수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공방은 개헌특위 재가동 첫날부터 시작됐다. 헌법 전문에 ‘촛불 정신’을 명시하는 문제 등을 두고 여야 간 현격한 시각차로 난항을 겪으면서다. 주제와 동떨어진 질문과 정치 공방 성격의 질문은 계속 등장했다. 지방분권 집중토론이 예정됐던 지난 28일 이주영 개헌특위 위원장이 “어려운 쟁점은 미루고 합의가 잘 될 수 있는 기본권과 지방분권만 가지고 개헌 관련 국민투표를 하자는 요구를 권력을 가진 실세들이 자꾸 이야기하면 국민에 반감만 불러일으키고 개헌 합의를 이뤄내는 데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헌 논의가 그간의 정치권 주판알 튕기기식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개헌특위 자문위원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이 끼어드는 일도 빈번했다. 한 여권 의원은 “자문위원의 설명을 충분히 듣고 답변을 해야 몰입도가 높아지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며 “자문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질문이 있어 자주 산만해졌다”고 비판했다.
지방분권을 주제에 올린 토론회장에서 한 야당 의원은 “지방분권은 당연히 갈 길이다. 개헌의 명분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극복에 있는 만큼 더 중요한 분권형 국가권력구조 개편이 선행돼야 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권력구조 부분은 집중토론 마지막 날 예정이 돼 있다. 오늘은 주제가 지방분권”이라고 주의를 줬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소득이 없다. 지난 22일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관한 개헌 핵심의제 논의를 시작으로 다음 달 6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진행키로 했으니 토론회의 절반이 지난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도 쏟아진다. 이날 전직 국회의장 등 정계 원로들과 종교계·시민사회단체 인사 총 560명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은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국민 참여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제 역할을 못 했으며 시민의 직접 참여는 봉쇄돼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이들은 이날 '헌법 개정 및 선거제도 개혁 촉구 선언' 기자회견에서 "우리 사회 시스템 전반을 개혁하려면 헌법을 개정하고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는데 국회 개헌특위와 정치개혁특위가 당리당략에 치우치고 있다"며 "이번 개혁이 무산되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체제 개혁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우려했다.
지난 7월 제헌절을 앞두고 국회의장실이 조사한 개헌 인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5%가 개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개헌특위가 맡은 책무도 그만큼 막중하다. 특위조차 방향을 잃는다면 개헌 실현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정쟁이 개헌 걸림돌이 된다면 국민의 지지도 더는 어렵다.
차현정 기자 ck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