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 임명을 놓고 이뤄지는 한국의 인사청문회는 장관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는 추억의 드라마 같다. 논문표절이나 법률위반, 위장전입 여부, 재산축적 과정, 이념성향 등이 청문회 과정에서 전부 들춰진다. 부끄러운 과거를 살아온 후보자들은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와 함께 만신창이가 되기 십상이다. 정도가 극에 달하면 후보자 자신이 사퇴하거나 청와대가 지명을 철회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까지 가지 않고 장관으로 임명된 사람들의 청문회 과정도 대부분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부끄럽다. 왜 저런 인물을 쓰려는지 모르겠다고 목청을 높이면 혹자는 ‘한국의 잘난 놈들은 예외 없이 저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저것 다 따지면 장관으로 임명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적합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왜 저런 기준을 만들어 청문회 때마다 정치엘리트는 더러운 군상들이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것일까.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프랑스는 우리와 같은 인사청문회 시스템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지난 2012년 올랑드정부에서 인사 참사가 두 번 일어난 후 곧바로 ‘공적 활동의 투명성에 관한 고등기관’(HATVP·Haute Autorite pour la Transparence de la Vie Publique)을 신설했다. HATVP는 독립된 행정기관으로 최고행정재판소·파기원(최고사법재판소)·회계감사원의 위원 중 각각 2인, 대통령과 상·하원의장이 각각 임명하는 1인 등 총 9인이 총괄한다.
HATVP는 장관과 고위 공무원의 임명에 있어 ‘프랑스식 베팅(Vetting a la francaise)’이라는 특별 심사를 실시한다. 즉 인사검증 절차에서 후보자들의 프로필과 재산을 철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장관들을 임명한 후 그들의 과오가 사후에 드러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인사 절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저녁 HATVP의 장 루이 나달(Jean-Louis Nadal) 의장은 마크롱정부 멤버들의 재산을 전면 공개했다. 장관 중 3분의 1 이상이 거부였다. 그 중 특히 주목을 끈 것은 니콜라 윌로 환경부장관의 재산내역이었다. 윌로 장관은 총재산 730만유로(한화 약 94억원)로, 집을 세 채 가지고 있다고 신고했다. 한 채는 코르시카에, 두 채는 각각 브르타뉴와 사브아에 공동 소유로 되어있다. 윌로 장관은 뮈리엘 페니코드 노동부장관 다음으로 재산이 많았다.
그러나 르 파리지엥(Le Parisien)의 폭로에 의하면 윌로 장관의 재산내역에는 아홉 대의 차량이 포함되어 있다. 자동차 6대와 배 한 척, 오토바이 한 대, 전기 스쿠터 한 대다. 2014년 취득한 BMW 한 대(3만3000유로)와 올해 취득한 폴크스바겐 한 대(5만유로), 2000년에 구입한 BMW 오토바이 한 대(1000유로), 1998년 구입한 시가 1000유로 상당의 랜드로버와 푸조복서다. 윌로 장관의 차량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 것은 그의 차량 일부가 대기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르 파리지엥은 윌로 장관의 차량 중 4대가 20년 이상 된 것으로 “아마도 공해방지의 최근 규범을 지키고 있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윌로 장관은 이러한 논쟁을 일축하기 위해 프랑스 일요신문 <르 주르날 뒤 디망슈>와의 인터뷰를 통해 “트집잡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개의 경우 자신이 운전한다”고 보증했다. “투명성이지 관음증, 트집잡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나는 95% 전기자동차를 운전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윌로 장관은 자신의 재산 반은 25년 동안 텔레비전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이고, 나머지 반(400만유로)은 자신이 환경보호를 위해 세운 회사 에올(Eole)과 우수아이아(Ushuaia)가 만든 제품의 저작권과 로열티를 통해서였다고 밝혔다.
HATVP는 장관들의 공적 활동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그간 일해 온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르 파리지앵>은 윌로 장관이 소유하고 있는 오래된 차량이 대기를 오염시킬 가능성을 고발했다. 그러나 윌로 장관은 <르 주르날 뒤 디망슈>와 인터뷰를 자청해 잡음을 일축하고 자신의 재산형성과정을 투명하게 밝혔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교훈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프랑스의 HATVP는 발족 이래 과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어 무용론이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청문회는 HATVP의 역사보다 훨씬 긴데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온갖 잡음을 일으키고 인사참사로까지 이어져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HATVP의 재산공개로 구설수에 오른 윌로 장관의 처신이다. 그는 곧바로 한 언론과 인터뷰를 자청해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고 잡음을 진화하려고 나섰다. 한국의 장관들이 청문회 때마다 고개 숙인 죄인이 되어 국민 앞에 백배사죄하고 언론 앞에 감히 나타나지도 못하는 상황과 천양지차다.
적어도 한 나라의 장관이라면 이러한 당당함을 갖출 필요성이 있다.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그간 한국 사회의 부패를 드러내고 단죄하는 효과가 있지만, 자질보다 개인의 신상털기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해 장관이 된다 한들 체면은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져 권위는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프랑스의 사례처럼 우리도 제대로 된 고위 공직자를 선발해 그들의 권위를 살려줄 수 있는 실용적인 인사시스템이 고안되어야 한다. 이대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