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고객에게 통지 없이 대출금리를 올려 이자를 더 받은 혐의로 기소된 외환은행 임직원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컴퓨터등사용사기 혐의로 기소된 권모씨 등 7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권씨 등은 지난 2007년 6월부터 2012년 7월까지 G사 등 고객에 대한 적법한 통지 없이 대출 관련 전산시스템에 접속한 후 임의로 가산금리를 약정한 금리보다 더 높여 전산 단말기에 입력하게 하는 방법으로 총 8700여건의 금리를 조작해 외환은행 총 270억원 상당의 이자를 과다 수취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컴퓨터등사용사기는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변경해 정보처리를 하게 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는 혐의다.
1심은 "이 사건 금리 인상 사례가 컴퓨터등사용사기죄에 해당한다는 점과 설령 사례 전부 또는 일부가 컴퓨터등사용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할지라도 피고인들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지시하는 방법으로 범행을 공모했다는 점이 각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는다"면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고객에 대한 통지 절차를 전면적으로 배제했거나 그에 따르는 상황에 해당하지 않고, 금리 인상 사실을 알린 이상 가산금리를 특정해 인상 시기나 정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컴퓨터등사용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컴퓨터등사용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검사의 주장에 대해 "컴퓨터등사용사기죄가 그 도입 취지상 피해자 몰래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점, 피해자가 금리 인상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대출계약을 해지할 권리나 기회는 주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민사상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어떠한 사실을 통지할 의무가 인정되는 경우에 이미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통지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기도 하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춰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설령 서면통지가 아닌 방법으로 통지 절차가 이뤄졌고 그 결과 피해자가 금리 인상을 알지 못하게 됐다고 할지라도 객관적으로 그러한 통지 절차를 통해 피해자가 충분히 금리인상 사실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외환은행이나 담당 직원에게 피해자 몰래 가산금리를 인상할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외환은행의 통지 방식이 어떠하든 피해자가 실제로 금리 인상 사실을 알게 되는지 아닌지는 피해자 내부적인 사정이나 우연적인 사정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본약관의 내용과 대출거래의 관행상 일반적으로 기준금리는 모든 대출자에게 공통되는 것으로 인상되는 경우에 게시하는 절차로만 고객에게 알리고, 개별적으로 통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해당 피해자에게만 금리가 인상된다고 알렸다면 이는 주로 가산금리에 관해 설명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산금리가 아니라 단순히 금리가 인상된다는 사실을 설명했더라도 결과적으로 인상된 금리에 따라 계산한 이자 금액을 낸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면 피해자 몰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심도 권씨 등에 대해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외환은행이 가산금리 인상의 정당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고객 몰래 임의로 가산금리를 인상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이와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이 사건 금리 인상 사례가 컴퓨터등사용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며 "원심이 컴퓨터등사용사기죄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를 지시하거나 공모한 것이란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검사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