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세계 잉여금, 예산 불용액 등의 재원을 활용할 계획이나 '궁여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세수 결손의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세제개편과 관련해서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실질적 효과를 두고 논란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추경예산안(추경) 편성없이 가용재원으로 세수결손에 대응할 수 있다고 18일 밝혔습니다. 올해 국세수입이 59조원가량 부족한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예상되면서 외평기금의 여유재원과 세계 잉여금, 편성 예산 중 쓰지 않은 불용 등으로 세수 결손을 메우겠다는 방침입니다.
세수 펑크에도 추경 없다는 정부
정부는 세수 재추계 결과를 발표하면서 '추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선을 긋고 있습니다. 추경을 거치지 않고 세수 재추계를 내민 것은 사실상 이례적입니다.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 2004년부터 2022년까지 국세수입 예산액보다 결산액이 적었던 세수 부족 사례는 총 9차례였습니다. 이 중 세입경정을 위해 추경을 편성했던 해는 6차례입니다.
그러나 기재부 측은 "본예산 대비 국채를 추가 발행하거나 지출을 증액할 경우 추경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세수 부족 대응과 같이 국채 추가 발행·지출 증액 없이 세계잉여금·기금 여유 재원 등 가용 재원 활용으로 대응하는 경우 세입경정 추경이 불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라살림연구소 측은 "과거의 사례에서는 세수 결손 시 추경을 편성해 대부분 국채 발행으로 부족분을 충당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며 "6차례 세입경정을 위해 추경을 편성했던 사례에서는 재원 충당 방안으로 전년도 세계잉여금과 한국은행 잉여금, 기금운용계획 변경 등을 통해 추가 재원을 확보했지만, 가장 큰 재원은 국채 발행을 통한 재원의 확보 방안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2023년 국세수입에 대한 재추계 결과 올해 국세수입은 341조4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18일 밝혔다. 사진은 5만원권 지폐. (사진=뉴시스)
"기금 활용, 윤 정부의 궁여지책"
구체적으로 외평기금 등 기금 여유 재원은 24조원 내외입니다. 일반회계 등 4조원 내외의 세계잉여금도 활용 대상입니다. 불용예산 규모는 10조원 안팎을 예상하고 있지만 연말쯤 최종 규모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중범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외평기금은 계속 외환보유액을 쌓기 위해서 빌려오는 자금으로 항상 이자 비용이 나간다"며 " 어떤 상황이 됐을 때 원화 재원이 지나치게 많이 쌓이게 되면 그것을 상환하는 것이 외평기금 수지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세수 추계하고는 별개로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외평기금은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기금입니다. 정부의 방안은 외평기금의 원화 여유 재원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으로 넘긴 후 일반회계에 투입하는 방식이며 일정 비율까지는 행정부 재량으로 공자기금 자금을 일반회계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김은정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협동사무처장은 "세수 결손의 우려는 올해 초부터 제기됐던 문제인데, 9월 중순에 들어서야 재추계가 나왔다"며 "더구나 내년도 예산안이 발표된 이후에 재추계 결과가 나온 것은 예산안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추경 없이 외평기금 활용 등을 제시한 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정부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안이라고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달 초 참여연대 측은 논평을 통해 "국채 발행도, 감액 추경도 하고 싶지 않은 윤석열 정부의 궁여지책"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세수 결손 문제는 국채 발행이나 감액 경정과 같은 대안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외평기금 활용은 근본적 대책으로 보기 어려운 꼼수라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동안 일반회계 일시 재원 활용을 위한 외평기금 사용이나 외평기금 재원 축소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는데, 갑자기 세수 결손 20조원 안팎의 부족분에 대한 외평기금 활용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며 "외평기금이 제대로 된 원칙 없이 정부 필요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는 않은지 엄중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2023년 국세수입에 대한 재추계 결과 올해 국세수입은 341조4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18일 밝혔다. 사진은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 (사진=뉴시스)
부자감세 아니라지만 '여전히 논란'
정부가 추진한 법인세·소득세·종합부동산세 감면 내용의 '부자감세' 세제개편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세수부족 사태가 부자감세로 인한 것이 아니라며 경기 악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2년 세제개편의 2023년 세수 효과는 6조2000억원 수준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세목별로 보면 소득세 3조5000억원, 종합부동산세 1조3000억원, 증권거래세 7000억원, 법인세는 5000억원 등입니다.
5년간 세수효과는 13조1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기재부는 세제개편이 경제 활력을 높이는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성장과 세수의 선순환으로 중장기 세원 확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크진 않다. 감세를 하든, 확장 재정을 하든 그에 따른 일정한 경기 활성화나 민생 안정의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의 폭으로 나타나느냐, 어느 정도의 시차로 나타나느냐의 문제지 감세하면 무조건 영원히 세입 기반을 잠식한다. 반대로 증세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는 그 누구도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수추계 모델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입니다.
이 와 관련해 한 경제학자는 "바로 코앞의 세수추계도 제대로 못 맞추는데 5년간 세수효과는 어떻게 보장하냐"며 "경기변동의 예측 한계라해도 세수부족 위기는 정책의 신뢰성까지 흔들리 수 있는 요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종=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