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원석 기자] LG화학 제약사업 부문이 최근 미국에서 투자자 설명회를 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 새 비전 제시에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월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했지만 1년이 지나 내놓은 사업계획이 다른 그룹사들에 뒤쳐질 뿐 아니라, 해마다 새로운 목표와 비전을 제시했던 합병 전 LG생명과학 수준에도 못미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약사업을 이끌고 있는 손지웅 부사장이 그룹사라는 경직된 시스템에 갇혀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손 부사장은 LG화학이 LG생명과학 인수합병 직후 영입한 바이오 분야 전문가다. 한미약품 최고의학책임자 겸 신약개발본부장 출신으로 폭 넓은 지식과 경험을 갖춘 업계 최고의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인 손 부사장이 언론과 투자자들 앞에 섰다. LG화학 이직 후 첫 공개자리에서 손 부사장 밝힌 사업 계획은 대사질환(당뇨, 비만 등)과 면역·항암 분야에 신약 R&D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었다. LG화학 관계자는 "대사질환과 면역·항암제는 비임상 단계 후보물질"이라며 "이 분야에 대해서서는 2020년까지 보수적으로 4000억원을 투자해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외부로부터 후보물질 도입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사질환은 이미 LG생명과학 시절부터 보유한 파이프라인으로 새롭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면역·항암제가 추가된 부분 역시 아직 초기 단계로 구체적 설명을 하지 못해 실망감을 안겨주며 "손 부사장 답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LG가 그룹 차원에서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한 합병 취지가 무색할 정도라는 것이다.
글로벌 신약 1개를 개발하기 위해선 10년 이상 1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삼성(2010년)과 SK(2016년)가 제약을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뒤 이듬해부터 명확한 사업 방향을 선정한 후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는 것과도 뚜렷히 비교된다.
LG화학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업을 잘 모르는 그룹에서 사실상 의사결정을 주도해 사업 포트폴리오 선정이 지지부진한 것"이라며 "대기업 특성상 장기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R&D를 총괄하는 손 부사장이 경직된 시스템에 갇혀 실질적으로 역량 발휘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인수합병 당시 LG화학은 생명과학사업본부에 매년 3000억~5000억원 규모의 R&D와 시설 투자에 나서고 2025년까지 바이오 사업을 매출 5조원 규모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라면 이같은 목표는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LG화학 관계자는 "제약업이 제조업처럼 합병하자마자 바로 연구개발비를 2~3배 늘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양질의 후보물질을 단기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현재 이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바이오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며 "2025년까지 CAPEX(자본적 지출)를 포함해 연 4000억원 수준의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LG화학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