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진영 기자] 금융당국이 이번 가상화폐 관련 은행권 현장조사 결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 것은 ‘벌집계좌’를 통한 거래였다. 다수의 계좌를 통해 모은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돈이 법인계좌 등 다른 하나의 계좌로 모았다가 또 다른 계좌로 이체되는 과정에서 투자자 확인이 어려워지고 자금세탁 등 범죄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이드라인에는 실명확인 등 고객확인 제도를 강화와 자금세탁신고 의무 강화 방안이 포함됐다. 특히 거래소가 계좌를 사적으로 활용할 경우 은행이 금융거래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며 가상계좌 취급 여부를 은행권에게 맡겼지만 상시 점검을 예고하는 등 가상화폐 취급에 대한 날을 세웠다.
이번에 적발된 벌집계좌는 일반적으로 운영자금 계좌로 이용하는 일반법인 계좌에 투자자들이 입금하면, 그 돈으로 거래소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의 규제로 은행들이 가상계좌 서비스를 중단하자 나타난 편법으로, 법인계좌에 입금된 투자자들의 자금 기록은 엑셀파일 형태로 운영된다. 때문에 거래자 수가 많아지면 관리가 어려워지고, 자금이체 오류나 해킹 등 보안사고 우려도 높다.
금융위원회는 벌집계좌를 통한 거래시 거래소 법인과 대표자간 금융거래에서 사기, 횡령, 유사수신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거래소 법인계좌에서 거액의 거래자금을 인출해 다른 거래소로 송금하는 경우 시세조종 등 불공정 거래가 발생할 수 있으며 거래소 법인과 투자자 간의 자금 혼재로 회계관리가 불투명해져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사 측면에서는 거래소 계좌에 자행-타행 거래가 얽혀있어 금융회사가 이용자의 고위험 여부에 대한 확인이 어려워지며, 이로 인해 의심거래 보고도 어려워진다.
벌집계좌 내의 자금이 사실상 투자자 개인의 자금인 만큼 안정적이고 투명하게 관리돼야 하지만 거래소 대주주 계좌 또는 거래소 타행 계좌로 이체 되는 경우가 확인되기도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처음에 조사 나갈때 20개 거래소가 법인계좌를 이용한다는 정보를 갖고 실시했는데 조사기간 1주일 사이 60여개로 늘어났다"며 "은행의 자체점검과 상시점검을 실시할 경우 얼마나 많은 군소 취급업소가 나올 지 추측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가상화폐에 대한 은행권 위험 인식 부족과 그로 인한 미흡한 대처가 이같은 문제들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은행 내 자금세탁방지 총괄부서와 가상화폐 관련 사업부서간에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아 자금세탁 위험 검토가 미흡하기도 했으며 대부분의 은행들이 가상통화 관련 정부합동 TF 논의사항·지도사항을 경영진에 요약 보고했고, 경영진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금융거래가 빈번하거나 규모가 거액임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 금융거래에 활용되는 가상계좌에 대해 위험도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개 가상화폐 거래소가 가상계좌 재판매 업소로부터 취득한 가상계좌를 이용한 사실이 적발됐지만 해당 은행이 이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통신업, 쇼핑몰 등 가상화폐와 무관한 법인이 가상화폐용 계좌를 개설했음에도 이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따라 이날 발표된 은행권 가이드라인에는 벌집계좌에 대한 관리와 은행권에 대한 가상화폐 관리 강화 방안이 주로 담겼다.
금융위는 먼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를 요구했다.
금융거래상대방이 전자상거래업, 통신판매업 등 특정 업종을 영위하거나, 단시간 내에 다수의 거래자와 금융거래를 하는 등 통상적이지 않은 거래행태를 보이는 경우 특별히 주의하도록 했다. 이번 현장점검에서 거래상대방 중 쇼핑몰까지 발견됨에 따른 조치다.
거래상대방을 취급업소로 식별한 경우에는 통상의 확인사항 외에 취급업소가 거래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지 확인하도록 했는데 ▲취급업소의 금융거래 목적과 자금의 원천 ▲취급업소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내용 ▲취급업소의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서비스 이용여부 및 이용계획 ▲취급업소가 이용자의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등을 포함한 신원사항 확인 등을 검토하도록 했다.
만약 거래소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은행이 자체 판단에 따라 금융거래를 거절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은행에 정보 제공을 거부하거나, 허위자료를 제출하는 등 정보제공을 사실상 거부하는 경우 은행 거래가 거절될 수 있다.
자금세탁 의심거래에 대한 보고 의무도 강화했다.
FIU(금융정보분석원)가 제공하는 자금세탁 의심 유형을 토대로 자금세탁 거래로 볼 수 있는지 적극 판단해 이를 FIU에 보고하도록 했다.
FIU는 ▲투자자들이 1일 1000만원, 7일 2000만원의 금융거래를 하거나 단시간 내에 빈번한(1일 5회, 7일 7회) 금융 거래를 하는 경우 ▲금융회사의 거래상대방 중 법인 또는 단체가 취급업소와 금융거래를 하는 경우 등을 자금세탁 의심 유형으로 꼽았다.
실명확인, 거래소의 정보 공개를 통해 벌집계좌 발생을 차단하고 자금세탁 의심거래 보고 의무를 강화해 기존 벌집계좌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밖에 금융회사 이사회·경영진에게 자금세탁방지와 관련된 의무를 부여하고, 임직원에 대한 교육, 자금세탁방지관련 감사 등을 실시하도록 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은행들이 자금세탁 방지 위해 인력 보강하고 은행 자체적으로 자금세탁을 관리할 수 있는 자신이 있으면 가상거래를 하라는 것"이라며 "은행의 선택이지만 관리를 제대로 못할 경우 자금세탁 관련해 평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한편, 가상화폐 시장은 이날 금융당국의 발표에도 크게 하락하거나 상승하지 않는 등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신원희 코인원 최고운영자는 "이번 당국의 발표는 가상화폐에 대한 쐐기로 더이상 정부의 혼선이 없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자금세탁방지의 경우 일반 투자자들이 채감하기도 어렵고 해당되지도 않기 때문에 시장에 큰 혼동이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이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 중 금융부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 훈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 최성일 금감원 부원장보,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정완규 금융정보분석원장, 김홍식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사진/금융위원회
양진영 기자 camp@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