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김한정 "냉전적 사고 버리고 21세기형 안보 고민할 때"

야권 색깔론 공세 일침…"남북관계에 우발성·돌연성 상존"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 '북한혐오' 아냐…단일팀 선전 과정서 많이 해소될 것"

입력 : 2018-02-05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지난해 12월 개봉 후 450여만 명이 관람한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 대통령 당선인(이경영 분)이 자리에 앉아 ‘원래 하나였던 것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을 때 현직 대통령(김의성 분)이 남북관계에 위험을 가져올 결정을 전해온다. 당선인은 안된다며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장면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실에서 촬영됐다. 소품도 의원실 내 물품을 한껏 이용했다. 영화 속 ‘행동하는 양심’ 액자는 의원실에 걸려있던 것을 그대로 활용했다. 당선인이 책을 읽는 장면은 의원실 서가에 꽂혀있던, ‘동방정책’으로 유명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 전기에 표지를 입혀 촬영했다. 책 표지문구도 브란트 총리의 말에서 따왔다.
 
영화 속 대통령 당선인처럼 김 의원도 남북관계의 결정적인 장면들을 목격한 것이 장소섭외로 이어진 듯 싶었다. 1989년 김대중 당시 민주당 대표의 공보비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 의원은 김대중정부 시기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 대외협력보좌역,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도 수행했다.
 
당시 경험에 비춰 현 한반도 정세를 놓고 할 말이 많을 듯 했다.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한정 의원은 “북한을 평화 분위기로 끌어 갈수록 우리에게 유리해지는 것”이라며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공세를 펴는 일부 야당에 대해서는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21세기형 안보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도널드 그렉 전 주한 미국대사(왼쪽)가 2016년 10월26일 서울 동교동 이희호 여사 자택을 예방해 이 여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가운데가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 사진/김한정 의원실
 
"북한 움직임 '위장평화공세' 주장은 단견, 대화로 이끌수록 우리에게 유리"
 
김 의원은 지난해 말 수차례 “지금은 안보위기 국면이지만 다가올 남북관계의 터닝포인트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이어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을 시사하던 중에 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던 이유가 궁금했다. 김 의원은 “남북관계의 특성은 ‘롤러코스터’ 같다는 것이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법인데, 지난 10년 간의 내리막이 너무 길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권교체는 북한 입장에서 내심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로 여겼을 것”이라며 “북이 ‘핵무력 완성’을 주장한 것도 그들(북한) 시각에서 협상 여건을 만든 것으로 봤다”고 했다.
 
실제 우리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나서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일방적 통보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의 사전답사 일정이 하루 연기되거나 금강산 합동문화공연이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고 있다. 김 의원은 “우리가 상황관리를 잘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모든 상황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참여로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개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스스로 잔칫상을 엎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전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인내하라. 협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달려있다. 정상회담을 실시하는 것이 우리의 승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북한 선수단·예술단이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승리다. 이를 놓고 ‘위장 평화공세’라고 말하는 것은 단견이다. 북한을 평화와 대화로 끌고 갈수록 우리에게 유리해지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앞줄 왼쪽 세번째)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개최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한 전진대회'에서 동료 의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한정 의원 페이스북
 
김 의원은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있던 2002년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일 월드컵 폐막 하루 전 북한이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우리 해군함정을 공격했을 때다.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당혹스러웠다.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한 김 대통령은 북한에 엄중한 항의를 전하고 해명을 요구했다. 의외로 신속하게 회신이 왔다. (당시는 김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에 핫라인이 살아있었다.) 한 마디로 ‘아랫사람들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유감의 뜻, 재발방지 약속과 함께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도 분명히 보내왔다. 한 달 후에는 전통문을 통해 국방위원장 명의의 사과문서도 보내왔다. 한미연합사를 통해 연평해전을 일으킨 부대 상부 선에서 도발지시 흔적이 있었는지 찾았지만 찾지 못했으며, 휴전선도 평온했다. 동쪽 금강산 관광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북한의 도발에 분개했지만, 상황을 우리 스스로가 확대했을 때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북한에 사과를 확실히 받고 월드컵은 정상 진행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대응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론을 폈다.
 
“역으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해 응전이나 보복을 하고 확전으로 이어졌다면 월드컵의 성과는 사라지고 전 세계가 중계방송하는 난장판이 됐을 거다. 공든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가 됐을 것이다.”
 
남북관계에는 우발성·돌연성이 있으며 특히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모든 상황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2003년 11월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찾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의 휘호 ‘실사구시'가 적힌 도자기를 선물하며 그 뜻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에 도자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김한정 당시 비서실장(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진/김한정 의원실
 
"국제협력 틀에서 북한문제 해결, 우리 경제 활로 열릴 것" 
 
김 의원은 남북교류를 통해 우리 경제의 활력을 찾기 위해서라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과 대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로서 지불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사실상 섬나라인데다 안보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겪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있다. 중앙아시아나 러시아로의 진출 길목에 있는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국익에 유리하도록 정세를 바꿔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국제협력의 틀에서 북한 정권을 안심시키고 해결해 나갔을 때 우리 경제의 활로가 열리고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생긴다. 이같은 잠재력을 우리가 이념적인 이유로 포기해야 하나. ‘통일되면 우리가 북한사람들 모두 먹여살려야 한다’는 식의 수세적인 대북관은 잘못된 것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난데 대해서도 김 의원은 “반 통일이나 북한 혐오에 의한 분리주의적 움직임으로 확대해석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촛불세대들은 반칙과 특권에 대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단일팀 구성이 북한이 갑질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지금껏 애써온 우리 선수단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여지는데 대한 정서적 반발도 있었다. 정부가 시간에 쫓기면서, 선수단에 양해를 구하고 국민적 동의를 받는 과정이 생략되며 논란이 증폭된 것 아닌가 싶다. 남북이 올림픽에서 공동입장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선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으로 본다”.
 
그 연장선상에서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으로까지 주장하는 일부 야당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우리 야당이 21세기형 야당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정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안보를 강조한다고 모든 것이 합리화되지 않는다. 21세기형 안보에 대해 그 분들도 고민해야 한다. 진정한 안보는 안정이고 평화다. 우리 야당이 안보·보수정당을 주장하려면 정책적 목표가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일부 야당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강경발언만을 지속한 결과 지지율이 정체되는 것 아니냐.”
 
인터뷰 말미, 김 의원은 기자에게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신간 ‘새로읽는 남북관계사 - 70년의 대화’를 건넸다.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 교수의 책 내용에도 김 의원의 인터뷰와 겹치는 대목이 많았다.
 
“기다리면 할 일이 없고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이런 수동적 접근의 시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북한 붕괴론’이다” “남북관계는 어둠의 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북한이라는 다리를 건너 아주 오래된 ‘북방경제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교류 구상은 정립된 듯 보인다. 문제는 시기와, 실행을 위한 의지다.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이 인터뷰 후 '행동하는 양심' 액자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한정 의원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