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서초사옥에서 직원들이 회사 로고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이재용 부회장이 353일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삼성은 가슴을 짓눌렀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분위기다. 대법원 판결과 사회 비판여론 등 난관이 있지만, 이 부회장의 자유로운 보폭 속에 차츰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를 보인다.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사회공헌 약속부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압박 수위를 높이는 지배구조 과제까지, 이 부회장의 이후 예측 가능한 행동반경에 포함된다.
5일 구속에서 풀려난 이 부회장은 구치소에서 영치품을 챙기고 나와 취재진 앞에서 “여러분들께 좋은 모습 못 보여드린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1년동안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직후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만나러 삼성병원으로 이동했다. 이 부회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법정에서 나올 때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삼성 측은 유죄 판결이 아쉬우면서도 일단 풀려난 것은 다행이란 분위기다. 1심에서의 5년 실형 충격에서 벗어나 경영 정상화의 ‘가속 페달’을 밟게 됐다. 지난 연말 사장단 인사를 단행해 적체는 풀었지만 조직개편 등 변화는 최소화됐다. 4차산업 대전환기를 맞이해 혁신에 탄력적인 조직으로 대대적인 수술이 예상된다. 인수합병(M&A) 등 정체됐던 투자도 과감하게 풀 것으로 보인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공헌 약속이나 지배구조 개선 대책이 우선적으로 예측 가능하다.
특검은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 확실해 최종 결론까지 변수는 남아 있다. 전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과 결부된 재판인 만큼 시민단체 등 사회 비판여론의 역풍도 무시할 수 없다. 재판부는 집행유예에도 정유라씨 승마지원 부분은 유죄로 인정했다. 주총장 등에서 반대여론이 불거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일단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이 부회장의 경영 보폭에는 제약이 생긴다. 원칙적으로 경영에 관여할 수 없도록 상장사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게 규정돼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등기이사에 올라 있다.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까지는 수개월이 소요돼 불안요소는 지속된다. 재계 관계자는 “(유죄 시)경영 참여 배제는 외형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총수가 실권을 쥐고 있으니 큰 의미가 없다”면서도 “등기이사에서 물러나 경영책임이 부재하다는 논란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의 악연은 숙명처럼 계속된다. 특검이 주장한 이 부회장의 뇌물죄 성립 근거는 포괄적이고 인위적인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이며, 김 위원장이 수사 때부터 이같은 이론을 도왔다. 재판부가 경영권 승계에 대한 명시적, 묵시적 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해 승계이론은 무너졌지만, 공정위 측면의 압박은 진행형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도 재계 간담회 이후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개편사례를 발표하며 압박을 이어갔다. 5대그룹 중 현대차, SK, LG, 롯데 등 4개 집단만 구조개편안을 발표·추진했다고 밝혀, 사실상 삼성을 겨냥했다. 삼성은 과거 순환출자 고리 해소 작업을 진행해왔으나 7개가 남은 이후는 답보 상태다. 앞서 공정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신규 순환출자가 강화된 부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수정, 삼성에 이미 한차례 제재를 가했다. 이에 따라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404만주를 올 3분기까지 매각해야 한다. 이를 계기로 이 부회장의 복귀와 함께 순환출자 해소 움직임도 재개될 수 있다.
최근 액면분할 발표와 삼성물산의 서초사옥 매각, 한화종합화학 지분 처분 등 현금확보 동향, 삼성카드의 자사주 매입 등으로 지배구조 변화 움직임도 감지된다.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지분을 삼성물산 등이 매입해 내부지분으로 흡수하거나 연장선에서 삼성생명의 금산결합 지분 해소 후 금융지주전환 시나리오 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의사결정구조도 손볼 수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내 계열사간 사업협력을 위한 전략TF가 구축됐지만 그룹 전체를 총괄할 컨트롤타워 부재가 비정상적이라고 김 위원장으로부터도 지적을 받았다. 현대차의 경우 주주권익 보호를 담당하는 사외이사 1인을 주주들로부터 공모형태로 추천받아 선임하는 계획이 자발적 개혁 사례로 인정됐다. 출자구조 전환 등보다 접근이 쉬운 이사회 개선부터 삼성이 우선 행동에 나설 만한 대목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