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북한이 오는 9~11일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으로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보내기로 하면서 청와대의 손님맞이 준비도 분주해지고 있다. 북한이 역대 최고위급 인사를 보내 성의를 보인만큼,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정상급 단독회담’ 등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화답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기자들과 만나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쪽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며 북측의 의사를 존중할 뜻을 내비쳤다. 김의겸 대변인도 전날 “우리는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따뜻하고 정중하게 맞을 것이며, 다양한 소통의 기회를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문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이 별도의 ‘정상급 회담’을 갖는 방안이 유력하다. 북한의 ‘정상’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다. 김 상임위원장은 ‘정상급’으로 분류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문 대통령의 ‘평창 구상’을 감안하면 회담을 최대한 격상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상임위원장이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 오는 만큼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비핵화와 같이 민감한 주제보다 올림픽 성공개최나 남북관계 개선 등을 주제로 관계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단독회담이 불발될 경우 올림픽 공식행사에서 자연스레 조우하는 형식으로 만남이 이뤄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9일에는 개막식 및 개막전 리셉션이 있고 10일 여자하키 남북단일팀 경기가 있다. 11일에는 삼지연 관현악단의 서울 공연 등도 예정돼있다.
미국 대표단을 이끄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의 조우, 즉 북미접촉 가능성에도 남북대화 만큼이나 관심이 모인다. 다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양측이 일종의 외교적 기싸움에 나섰기 때문이다.
펜스 부통령은 노골적으로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7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일본총리와 대북 압박 메시지를 내놓는다. 8일 한국에 도착해 평택 천안함 추모관을 찾고, 다음 날 서울에서 탈북민들과 만난다. 특히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 후 일주일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친도 일정에 동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북한 역시 8일 건군절 열병식을 개최한다. 정부 관계자는 “열병식은 북한의 내부적 수요에 따른 행사”라며 “평창올림픽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핵전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나 핵탄두 등을 대거 선보이며 펜스 부통령의 압박에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제재와 압박이라는 미국의 입장이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지만,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정치적 역동성이 발휘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북미대화 성사에는) 두 당사자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길 기대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 2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 개선 모멘텀이 향후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면서 “펜스 부통령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미측의 협력을 요청했다.
강원 평창선수촌 라이브사이트 무대에서 5일 열린 평창올림픽 휴전벽 제막식에서 북한 선수단이 참석해 '북남하나!' 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