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정치와 결합되면 어떻게 변화되는 지를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올림픽 뒤에 가려진 북핵의 어두운 그림자를 감출 수는 없다. 올림픽이 가져다주는 평화는 일시적이지만 평창이 끝나면 북핵을 둘러싼 갈등의 민낯이 곧 드러난다.

 

이번에 내려온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의 강릉과 서울에서 열린 두 차례 공연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북한이 의도했던 북한 체제에 대한 선전선동의 효과는 없었다. 차라리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 위원장 등 3대세습을 찬양하는 선전 선동 등 북측이 하고 싶은 레퍼토리를 있는 그대로 공연하도록 하는 것이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 우리사회는 이제 화려한 화장발로 감춰진 ‘삼지연관혁악단’의 무대 뒤를 잘 알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고 우여곡절 끝에 여자 아이스하키단일팀을 구성하고 예술단과 응원단을 파견하는 것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그러나 세상일에 공짜는 없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에 새겨진 문구다. 미국을 방문하는 우리 대통령이 반드시 참배하는 곳으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해 미국을 방문, 참배한 바 있다. 우리 역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고 이번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북한의 참가를 독려했고 결국 북한의 참가로 평창올림픽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나 청와대가 북한을 지나치게 대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제사회가 비판하고 있는 3대세습의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함께 방문하자 국빈급 이상의 영접을 하는 것도 모자라 문 대통령의 일정을 온통 북측 동선에 맞추고 북 예술단 공연도 북 대표단과 함께 보고 이낙연 총리도 오찬을 베푸는 등 과공(過恭)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김영남 의장과 김여정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통일부 장관이 직접 비행기 안까지 들어가서 영접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차관)까지 나왔다. 김영남 의장이 ‘반말투’로 영접 나온 장관에게 하대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개막식에 참석한 다른 국가 지도자들의 의전은 제대로 했을까. 폐막식에 오는 국가지도자 의전 역시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우리 장관들이 김영남, 김여정 일행을 대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어떨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물론 모처럼 온 북한의 귀한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전에는 지켜야 할 관행과 격이 있다. 공짜 자유가 없듯 공짜 점심도 없고 북한의 참가도 공짜는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첫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도 북한은 엄청난 지원을 요청하는 청구서를 내밀었듯이, 이번에도 이미 김여정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 방북을 초청해놓고 계산서를 제시할 참이다. 한미훈련 영구 중단 정도가 아니라 더 비싼 계산서를 내밀 것이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 전쟁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정부의 목표는 맞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여건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목표를 향해 돌진하면 주변 우방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등 예상치 못한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미국이 현 상황에서의 북미대화를 거부하고 있는데도 억지로 펜스 미 부통령을 한 자리에 앉히려다 불발에 그친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외교적 참사를 범한 것은 어영부영 북미대화를 이끌 수 없다는 엄정한 국제정세를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아마도 청와대로서는 남북대화 분위기를 북미대화로 이끌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미국을 대화테이블로 이끌려는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하려고 했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보지 않고 있다. 3대 세습을 통한 권력승계는 봉건시대에나 있을법한 권력구조다. 국가를 이끄는 최고지도부의 서열은 수시로 바뀌고 숙청과 감시 공포를 통한 체제유지가 북한 체제의 특징이라면 남북 간 정상이 만나더라도 시급한 핵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북한 스스로도 핵은 미국과 논의할 문제라고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있듯이 북핵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갖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북한의 평화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6월29일 북한은 서해에서 해상충돌을 일으켜 국지전을 일으켰다. 그 때 우리정부는 월드컵에 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 전전긍긍했다. 평창이후 북한은 강도 높은 대남평화공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평창이후가 더 문제다.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