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호 기자] 우리나라의 기업 지배구조개선을 위해서는 제도와 법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주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경영진들의 책임의식이 강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박용진 의원이 26일 주최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한 정책 세미나'에서 네덜란드계 연기금 운용사인 APG(Asset Management Asia)의 박유경 아시아 태평양 지역 기업지배구조 담당 이사는 "우리나라 거버넌스는 지배주주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배주주만 중요하고 주총을 1년에 한 번 열리는 행사쯤으로 여긴다"며 "그동안 우리나라는 10년 동안 거버넌스 구축에 대해 노력했지만 주주에 대한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APG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반대 의사를 밝혔고, 지난해 말에는 삼성전자에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정경유착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내는 등 매서운 주주활동으로 정평이 난 곳으로 그 중심에 박유경 이사가 있다. 그는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현대차, 삼성전자 등 대기업 주총에 직접 참석해 지배구조와 관련한 질의를 해왔다.
박 이사는 특히 우리나라는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크지만 주주들의 권한은 너무 작은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주총회 안건에 재무제표 승인, 통합보수 승인 등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안건이 올라오지만 중국의 경우 재무제표와 배당은 물론 사외이사 선임 M&A,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 경영에 중요한 사안이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라온다.
박 이사는 "우리나라 기업은 주총이 없어도 회사가 돌아간다. 오히려 기업은 주총을 안하고 싶어한다"며 "외국은 이해 관계자와 관련된 안건에서는 모든 이해 관계자(계열사)가 빠지고 이해 관계가 없는 주주들이 승인을 해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로 대주주와 사외이사 등 경영진의 책임의식을 꼽았다.
박 이사는 "우리나라는 거버넌스를 위한 법도 있고 제도도 있지만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며 "그 이유는 법과 제도를 실행하는 경영진의 책임의식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영진의 책임의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매입의 경우 30분씩 단 두번의 회의로 10조원 투자를 결정했다"며 "투자결정 이후 주가가 떨어지고 배당 성향이 6%로 한국의 12%에 비해 절반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배당에 영향을 주는 10조원을 왜 써야 했는지 주주들이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회의록을 실명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는 아시아 기업들의 제도·법규·내용·범위 등 랭킹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 9위, 2012~2016년 8위에 머물렀다. 한국 아래에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가 위치하고 있다.
증권사인 CLSA는 아시아 투자분석가들을 대상으로 각각 회사가 속한 나라의 지배구조 랭킹을 리서치했는데 우리나라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국가가 기업의 지배구조 정점인 중국보다 낮은 순위인 것이다.
박 이사는 외국인 주주들도 한국 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기관 투자자들이 주총에서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다. 삼성전자 주총에서 질문했을 때 우리가 처음이라고 의장이 발언한 것을 기억하다"며 "모든 주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주주총회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정훈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지난해 통과된 회계개혁법이 시행되면 이런 우려가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도록 인프라가 구축될 것"이라며 "해외 사례를 참고할 수 있도록 해외금융정보 법률 시스템을 2~3년안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유경 APG 이사(오른쪽)가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한 정책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종호 기자
이종호 기자 sun12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