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8일, 구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 이후 또 다른 인공지능(AI) 대 인간 대결이 관심을 끌었다. 바로 ‘빙판 위의 체스’로 불리는 컬링경기, 얼마 전 폐막한 평창 올림픽에서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온 바로 그 컬링에서 한판 대결이 펼쳐졌다.
경기도 이천시 소재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의 컬링센터에서 벌어진 이날 경기 주인공은 AI 컬링로봇 ‘컬리(Curly)’. 맞대결을 벌인 인간 대표는 지난해 이마트배 컬링대회 고등부에서 우승한 강원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컬링팀 선수들이다.
컬리는 스스로 경기전략을 수립하고, 빙판 위를 주행하고, 스톤을 투구하는 등 모든 걸 혼자서 해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SW)인 ‘컬브레인’과 실제 경기를 수행하는 하드웨어 ‘스킵로봇’, ‘투구로봇’이 협업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가령 스킵로봇이 헤드부에 장착된 카메라로 경기 영상을 인식하면, 컬브레인은 이를 토대로 최적의 투구전략을 수립한다. 이어 경기장 반대편에 위치한 투구로봇이 투구에 필요한 힘과 방향, 스톤 컬의 회전 등을 제어해 스톤을 투구하는 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8일 경기도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에서 ‘인공지능 컬링로봇 경기 시연회’를 개최했다. 사진/과기정통부
컬리와 고등부 학생팀은 오전, 오후 2차례에 걸쳐 경기를 진행했다. 결과는 1승1패. 오전 11시 1엔드 경기는 1대 0으로 컬리 승. 하지만 오후 2시반에 재개한 2엔드 경기에서 0대 3으로 컬리가 패했다. 1엔드 0대 1, 2엔드 0대 2로 학생팀의 완승. 춘천기계공고 컬링팀 선수는 경기 후 “오전에는 빙질에 익숙하지 못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며 “컬리도 전략을 잘 짜는 것 같고, 특히 스킬이 다양해서 당황스러웠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번 시연경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고려대학교가 주관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4월 공모를 통해 컬링로봇 개발 주관기관으로 고려대학교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컬리는 고려대와 울산과학기술원, NT로봇 등 국내 8개 기관, 60여명의 연구원이 참여해 개발했다. 그동안 컬리는 일본 도쿄대, 도호쿠대 등 아시아 10여개 대학이 참여한 ‘인공지능 컬링SW 경진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성환 한국인공지능학회장(고려대 뇌공학과)은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불리는 컬링도 바둑 못지않은 전략이 필요하다. 컬리에는 규칙 기반의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을 이용해서 실시간 전략을 추천하는 기술이 탑재됐다”고 말했다. 1321경기, 1만1000엔드, 16만 투구샷의 국제컬링경기 기보를 활용해 딥러닝으로 전략을 높였다.
이 학회장은 컬리 개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 경기장의 온도, 습도, 정빙 정도, 이전 투구 경로 등 빙판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외부 도움 없이 급변하는 빙질에 인간처럼 실시간으로 대처하도록 학습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는 설명이다. 컬링에는 크게 부딪히는 스톤 없이 하우스 안에 집어넣는 ‘드로우’와 상대방 스톤을 쳐내는 ‘테이크아웃’ 등의 투구전략이 있다. 현재 컬리는 드로우에서 하우스 안쪽 빨간색(지름 1.2m)에 65% 이상의 성공률을 보이고, 테이크아웃은 80% 확률로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과기정통부는 향후 이번 프로젝트에서 개발된 AI 핵심기술을 AI와 기계협업, 이동환경에서 컴퓨터 시각, 지능로봇의 정밀 제어 등 다양한 응용분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아울러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컬링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감안해 플로어 컬링, 스크린 컬링 등 스포츠 분야의 AI 도입 및 확산 계기로도 활용할 방침이다.
양환정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AI 컬링로봇은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등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첨단 기술”이라며 “이번 시연회를 계기로 컬링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이고, AI 핵심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도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