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헌법은 누구 겁니까

입력 : 2018-03-27 오전 6:00:00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헌법 개정, 즉 개헌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역대 정부에서도 개헌 논의는 있었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다른 시급한 현안이 많은데다 정치권의 이해가 엇갈리며 찬밥 신세로 전락하곤 했다. 이번은 과거와 다른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 뿐만 아니라 다른 대선 후보들도 지난 선거 기간 동안 앞 다투어 개헌 이슈를 들고 나왔다. 대통령 선거 전에 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유권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대통령 선거 이후 가능할 것으로 보았고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개헌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민들과 약속한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은 개헌 카드를 본격적으로 빼들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지난 2월19일 국민여론을 위한 홈페이지를 열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3월13일 문 대통령에게 개헌 자문 안을 보고했다. 역대 정권에서 볼 수 없었던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3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10년이면 세상도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 헌법은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 여론을 물어보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반응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헌법은 죽은 법이나 마찬가지다. 시대에 맞는 헌법으로 개정하는 일을 더 미루어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 국민의 기본권이 강화되고 지방 분권을 더 구체화하는 내용이 정부 발의 예정인 개정안에 담겨있다고 한다. 환영할 일이다. 한편 헌법 개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대목은 권력구조다. 그동안 한국 민주주의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상처 입었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많다. 전직 대통령 중 4명이나 검찰에 소환되었고 문 대통령의 전임 두 대통령은 구속 수감되어 있다. 1987년 이후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인물 중 4명이나 구치소 생활을 하게 되는 상황이니 현재의 권력구조가 멀쩡하지는 않아 보인다. 국민들에게 권력구조와 관련해 묻게 되는 질문은 4년 연임제를 선호하느냐 아니면 이원집정부제(국민이 뽑는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내정을 담당) 또는 의원내각제로 나누어진다. 최근까지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우리 국민들은 ‘4년 연임제’에 대한 선호가 절대적으로 높다. 그렇지만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내려놓고 어떻게 견제할지는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다. 사실 정부의 개헌안에는 국민의 경제 및 사회 활동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헌법 전문의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가치, 노동권 강화, 국민소환제, 수도조항, 토지 공개념, 18세 이상부터 선거권 부여,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감사원을 헌법상 독립기구로 두면서도 9명 중 3명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내용, 대법원장의 권한 약화,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법관 자격 요건을 삭제한 부분 등은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내용이다. 이외에도 구체적인 세부 조항으로 들어가면 대통령 권력구조 논의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중요한 사항들이 수두룩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개헌 논의에 들어갔던 국회 개헌 특위 관련자들은 잘 알고 있을 내용들이다.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던 개헌 논의가 활발해진 것 자체는 박수를 받을 일이다. 그러나 개헌을 대하는 시각이 내용이 아니라 시간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건 걱정스러운 일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 이므로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에 대해 국민 여론을 물어보면 찬성 의견이 높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6~17일 실시하고 18일 발표한 조사(전국1041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0%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2%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정부 개헌안 발의 관련 공감하는지’ 물어본 결과 10명 중 6명 수준인 59%는 공감하는 의견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정작 정부의 개헌안 내용을 조목조목 알고 대답한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절 한미FTA(자유무역협정)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찬성과 반대 의견으로 나뉘어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때 필자가 실시해 경종을 울렸던 설문조사 질문이 ‘얼마나 한미FTA 내용을 알고 계십니까’ 였다. 결과는 대다수가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나무늘보처럼 느린 진행 속도를 보였던 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하는 정부와 대통령의 의지를 모르는바 아니다. 굳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헌법 개정 논의의 핵심은 내용이지 속도가 아니다. 헌법의 주체인 국민들도 내용을 잘 모르는 개정 헌법의 탄생을 쌍수 들어 반길까.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질문이 ‘다스는 누구 겁니까’였는데 유행어를 빌어 묻고 싶다. 과연 ‘헌법은 누구 겁니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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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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