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나는 잘 안다’는 태도가 바로 성평등 저해 요소”

“미투 운동에도 불구 가부장적 문화 여전…사회적 인식 바꿔야”
"'젠더 감수성' 있어야 '다름' 이해…지금이 사회적으로 깊이 성찰 할 때"

입력 : 2018-04-05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서지현 창원지검 검사가 조직 내 성추행을 폭로한 지 2개월이 넘게 흘렀다. 미투 운동이 열풍으로 번지면서 문화예술계·정치권 등에서 수많은 성희롱·성추행·성폭력 사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지만 한편으로는 무고 위험 내지 펜스룰 등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고개를 들었다. 30년 가까이 여성운동을 해 온 로리주희(노주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은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습관이 가부장적 혹은 성차별 문화에 젖어있음을 알고, 실천하는 차원의 성문화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자신을 포함한 누구라도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편집자주)
 
 
최근 #미투 운동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미투 자체는 효과를 거뒀고 성과를 냈다. 예전에는 성폭력 폭로가 나오면 바로 의심을 먼저 했는데, 지금도 아예 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93년에는 성희롱 배상 판결이 농담거리가 됐다. 당시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2부장으로 활동했는데, 사람들이 절 보면 “야 저기 성폭력 왔어. 조심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2018년은 그 수준까진 아니더라. 각종 공동체와 조직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교육을 요청한다. 문제의식을 못 느끼던 사람이 ‘정말 모르겠어’라고 하는 고민이 변화 과정이다. “나는 여성주의에 대해 이만큼 알고, 이만큼 실천하고 있어”라는 생각은 성급하다. 미투 국면에서 ‘나는 다 알아, 나 빼고 문제야’가 큰 문제. 성별을 가리지 않고, 여성주의 활동가이든 아니든 성찰은 머리로 배웠다고 해서 바로 실천되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성찰이 필요하다.
 
미투 운동에 대한 곡해와 악의적 반작용이 심각하다.
 
한 신문기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2~2014년 성폭력 사건 중 0.5%가 무고였다. 피해자가 2000명이라면 1명이 무고다. 피해자 1999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런데 매번 성폭력·성희롱 이야기 나올 때마다 무고가 따라 나온다. 1:1이 아닌데 말이다. 한 50% 된다면 매번 할 만 하다. 0.5% 안되는데 무고 이야기하고 대책 만들라고 한다. 1999명 대책은 만들어졌나. 1999명 내버려두고 1명에 대해 먼저 만들어야 하나. 지금 무고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묻힐까봐 걱정되는 일반인 등 피해자 대책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고 대책을 완전히 손 놓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에너지 배분의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펜스룰에 대해서도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옛날엔 ‘같이 가야 돼’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안변했다. 같이 왔다고 생각했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가해자로 지목받고 있다. 결국 그걸 문제라고 각성할 수 없는 그들의 문화가, 어떤 위치에 갔을 때 ‘습’에 젖어버리는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 여자들은 역으로 펜스를 치기도 한다. “우리 특정 가치를 가지고 갈거야, 무지한 너에게 계속 설명하고 가르치려고 노력하지 않을래. 필요하면 따라와, 와서 물어, 와서 배워”라고 말이다. 여성주의 운동한 30년을 돌아봤을 때 “저 전략이었야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
 
뜨겁던 열기가 다소 꺾인 듯하다.
 
단순하게 사그라들었다고 표현하면 안 될 것 같다. 사그라들고 있다고 하지만 상담은 폭주하고, 발화 행사도 많다. 대책은 많이 나왔지만, 관은 제도 수립말고는 할 수 없는 게 없다. 제도는 앞으로도 꾸준하게 과제로 보완해야 나가야 하지만, 강간·추행 뿐 아니라 일상의 습관·문화에서 언어·태도·행동에서의 문제를 제거하려면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제도로 금지·처벌해도 비껴나가는 사례가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의무교육처럼 너무 형식적인 교육말고 어떻게 우리가 제대로 사회문화적으로 의식을 바꾸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한다. 그게 궁극적인 대책이라고 본다. 전반적으로 “여성 문제 알아. 여성 차별 당했지. 근데 옛날에 당했지 지금은 아니지 않아?” 이런 식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가부장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요즘 젊은 커플들은 데이트하는데 남녀 똑같이 내고 데이트 통장 만든다. 하지만 여자가 지속적으로 비용을 지불할 때 남자의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래서 ‘계산할 때 개념녀는 카드를 남자한테 줘야 해’라는 말도 있다. 사소한 일에서도 우리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나를 확인하고 나를 과시하려는 문화가 있다.
 
로리주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이 지난 3월27일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센터 개소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서울시는 최근 제3자 성희롱·성폭력 익명신고·제보 시스템을 도입했다.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고 사례 걱정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피해자가 말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무고로 몰릴까봐 더 말을 못하고, 어쩌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말하게 되면 힘 줘서 말하게 된다. 3의 강도로 말하면 되는데, ‘꼭 믿어줘야 돼’라는 생각 때문에 10의 강도로 말하게 된다. 위력이 크게 작동하는 곳에 제3자의 제보, 인지 사건을 다룰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피해자는 자신이 직접 신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질 염려, 무고로 몰릴 염려를 해야 하고, 개중에는 가해자의 인생을 ‘훅 가게’까지 하고싶지는 않아 망설이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성희롱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했더니 사람들이 말 자체를 못 꺼낸다고 한다.
 
성폭력·성차별 해소 정책에 따른 역차별 논란 등 후유증도 지적되고 있다.
 
공중 화장실 이용, 야간 택시 등 똑같은 경험에 대해서 남성과 여성의 맥락이 다르다. 맥락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젠더 감수성이다. 역차별을 얘기하며 "나도 잠재적 가해자화의 피해자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피해자 정체화는 지금은 할 때가 아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사회문화적으로 나도 모르게 뼛속 깊이, DNA에 묻힌 문제적 습관을 어떻게 개선하고 찾아낼 것인가, 그리고 발견할 때마다 삭제·제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 우리 모두 성찰할 시점이다. 그 말을 하고 싶다.
 
대통령이 개헌안에서 천명한 성평등 관련 부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성평등이라는 용어 쓰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그런 용어를 쓰면 역차별 논란이 제기될까봐 그런 거 같다. 심지어 교계에서는 “양성평등이라고 써라, 성평등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너무 협소한 시각이다. 2015년 유엔사무총장이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발표했고 여기에는 젠더평등도 포함돼 있다. 모든 정책을 만들 때 젠더 관점을 반영하고, 평등을 위한 디딤돌로서 한시적 우대조치, 특별조치를 수립하는 게 국제적 흐름이다. 헌법에 성평등 단어를 넣는 것은 국제적 흐름을 따르는 길이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성평등이 다 이뤄진 것처럼 말한다.
 
로리주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이 지난 2일 센터 안 사무실에서 미투 메시지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신태현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